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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꽃들에게 물었다 /박남준

일부 어른 돈 욕심에 아이들 도서관 난항

허탈감에 빠진 동심, 이 일을 어찌할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3-04 21:02:00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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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거린다. 오늘은 어떤 연둣빛이 고개를 비쭉거리나. 기웃거린다. 고개를 숙이면 그때서야 눈에 들어오는 여린 봄빛들, 막 깨어나기 시작한 봄날의 새싹들이 앙증맞다.

얼마나 길었던가. 꽁꽁 언 지난 겨울은, 지리산 자락이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산골마을에는 계곡의 물을 모아 놓은 상수도시설이 있다. 그런데 각각의 집으로 연결된 관들이 얼어붙어서 물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먹는 물은 다른 곳에서 길어다 쓴다고 해도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집에서는 그 불편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동안 물이 나오지 않았다. 하루종일 개울물을 길어다 끓여 붓고는 했더니 똑, 똑, 똑, 쪼르르르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예 그날부터 수도꼭지를 겨우내 조금씩이나마 틀어놓고 지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쓰기 때문에 수도세 걱정은 없었고 화장실은 마당 한쪽에 있는 발효재생 화장실, 조금 폼나게 말하니까 그럴 듯하지만 재와 톱밥 등으로 버무려서 잘 삭으면 텃밭에 거름으로 주는 전통화장실밖에 없으므로 물이 얼어있는 동안에도 걱정은 덜 되었던 것이다.

봄이 오지 않는 줄 알았다. 집들이를 한다고 했던 이의 약속 날짜가 물이 나오지 않아서 미뤄지고 이럭저럭 아는 이들이 살던 산골 집들은 모두 날이 풀릴 때까지 처갓집으로, 본가로 더부살이를 떠났다고 했다.

봄이 오기는 왔다. 뜰 앞에 아직 꽁꽁 언 땅을 뚫고 무언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어라 봄이 오기는 오네. 사람들이 미처 모르고 밟지나 않을까 몰라. 옹이가 박혀 있다가 동그랗게 구멍이 난 나무판에 먹물로 눈동자와 협조 문구를 써서 팻말을 꽂아 놓았다.

"앗! 꽃, 꽃들이 깨어나고 있어요 발밑을 살펴봐요." 그 앞에 앉아 인사를 건넸다. "어 그래 너구나. 참 추웠지. 오래 기다렸지. 그렇지 않아도 요새 자주 이 근처를 들여다보고는 했는데 반가워. 정말 반갑고 고마워. 나를 위로해주려고 왔구나."

봄비 그친 다음 날 황금빛 노란 햇살, 얼음새꽃, 눈새기꽃, 복수초가 피었다. 아직 꽃들이 화들짝 꽃사태가 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복수초를 시작으로 뜰 앞엔 청매화꽃과 홍매화꽃이 한 송이, 두 송이, 꼬물꼬물 하얀 솜털을 두른 노루귀 꽃이 꽃망울들을 터트렸다. 유난히 춥고 긴 겨울을 보내서 그런가. 이른 매화꽃의 향기가 더욱 깊고 그윽하다고 여겨진다.

긴 겨울동안 지인들의 도움으로 산에 간벌을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나무를 해서 장작을 패고 구들방 등에서 따뜻하게 보내는 동안 뜻하지 않은 일들이 마음을 상하게 했다. 악양에 들어와 가까이 지내던 동갑내기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았으며 십시일반 뜻을 모아 만든 작은 도서관이 암초를 만나 난항을 겪게 됐다.

도서관 문제는 어렵게 장소를 구해 월세 10만 원을 내던 조립식 건물이 도로 확장에 따라 헐릴 예정이 되자 도서관 재건축 공모사업에 서류를 내면서부터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문화관광부 지원사업에 선정돼 모두들 들떠 있었는데 이를 안 지역 모 군의원이 1억 원 규모의 사업권을 가로채려고 일부 마을 청년을 동원해 갖은 권모술수를 부리며 군과 면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돈 때문이다. 지금껏 도서관 문제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군의원이었다. 주로 귀농을 한 젊은 친구들이 자녀 교육문제를 고민하다가 머리를 맞대고 만든 도서관을 지원금이 나온다고 하니까 자기들도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며 문제를 지역민과 귀농한 객지 것들로 몰아가며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에는 그런 이기적이고 모리배와 같은 자들이 얼마나 득실거리고 있는가. 그동안 자신들의 귀중한 일과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며 엄마와 함께 책을 보는 도서관을 만들려고 애썼던 이들이 모두들 심한 허탈감에 빠져서 의기소침해 있다.

갓 피어나는 꽃밭에 앉아 꽃들에게 물어본다. 야! 이 일을 어쩌면 좋냐. 뭐라고, 첫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그래 그런데도 참 화가 치민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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