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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데스크시각] 길 죽이는 걷기, 길 살리는 걷기 /장재건

지리산 둘레길 등 과도한 열풍에 몸살, 신발끈 동여매며 자신의 걸음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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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위를 떨치던 한파도 한풀 꺾이고 봄이 성큼 다가섰다. 겨울이 지겨웠던 만큼 집 주위 공원 등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힘차게 파워워킹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 가족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 뒷짐을 진 채 음풍농월 하듯 천천히 걷는 사람…. 모양새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모습이든 이처럼 걷기는 이제 열풍을 넘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걷기가 유행이 된 것은 역설적이다. 걷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 중의 하나다. 그런 걸 굳이 찾아서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물론 걷기의 일차적인 목적은 건강을 위해서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만으로 이 유행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운동은 걷기 말고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닌 무언가가 있다.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문명화에 대한 반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걷기 열풍은 길을 만들어냈다. 있던 길은 새롭게 꾸며졌고, 사라졌던 길은 복원됐으며, 없던 길도 만들어졌다.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 등 명품길이 생겼고 전국 곳곳에서 많은 길들이 탄생했다. 본사에서도 부산의 아름다운 해안을 잇는 갈맷길을 개척했고 지금은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탐사하고 있다. 단조로운 집 주위를 걷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광이 함께 하는 명품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든 특색있는 길들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과도한 열풍은 열병을 낳고 있다. 명품길은 벌써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아직 전체가 이어지지도 않은 지리산 둘레길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훼손되고 있다. 길 주위 농작물을 따가는 것은 예사고 곳곳은 쓰레기 천지다. 한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소개한 이후에는 아예 유원지가 될 지경이다. 단체 해외여행 가듯 깃발 들고 우르르 몰려와 왁자지껄하며 아름다운 길에 쓰레기를 토해낸다.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길이 망가지고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개척하고 있는 본사에도 간혹 전화가 온다. 신문에 길이 소개된 이후 사람들이 몰려와 농작물 피해를 입거나 너무 소란스러워졌다는 지역 주민의 항의다. 이럴 때 마다 당혹스럽다. 과연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게 옳은 일인지 하는 생각도 든다. '친환경'이라는 미명이 붙더라도 개발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개발이랄 것도 없이 거의 있는 길을 이어가는 것이긴 해도 사람의 때가 묻으면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걷기가 생활 속 일부분으로 자리잡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게 고질적인 유행병의 하나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저 건강에 좋다니까, 경치가 좋으니까, 언론에서 소개하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몰려다니는 걷기라면 아예 길을 만들지 않는 게 낫다. 지금 우리의 걷기가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닌지, 도대체 왜 걷는건지 다시금 근본적인 물음을 해볼 필요가 있다.

한때 산꾼 사이에 1박2일도 모자라 당일치기 지리산 능선종주가 유행병처럼 번진 적이 있다. 지금도 여전할 것이다. 물어보자. 그렇게 빨리 가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등산과는 다르지만 지리산 둘레길의 몸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다간 '지리산 둘레길 1박2일 주파' 잔치가 길 곳곳에서 질펀하게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걷기는 마라톤이 아니고 경보와도 다르다. 무엇보다 걷기는 느림이다. 속도경쟁에 내몰리는 현대문명에 대한 반성이자 도전이다.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는 오히려 덤일 수 있다. 느리게 걸어야 주위의 꽃과 나무가 제대로 눈에 띄고 소중하게 느껴지며 자신의 내면도 보인다. 굳이 뭇 석학들의 걷기예찬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제대로 천천히 걸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유행병식 걷기가 못마땅하긴 해도 길은 많을수록 좋다. 아직은 우리 주위에 고즈넉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다. 봄바람이 살랑댄다. 이제 다시금 길을 나서보자. 어디든지 좋다. 단, 신발끈을 동여매며 나의 걸음이 길을 살릴지 죽일지 한번쯤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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