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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법이 법무부 앞에서 멈춘다면 /이한숙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이후 4년… 미등록 이주민에게 여전히 인권은 없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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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1-02-14 20:07:5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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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 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고 한다. 빤한 사실인데 꽤나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뒷면을 간과하는 경우가 흔하기도 하지만, 어디가 앞면이고 어디가 뒷면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든 경우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강제단속과 추방 위주의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정책이 그 예이다.

지난 11일은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4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2007년 그날 새벽, 단속된 미등록 체류자를 강제추방 전까지 구금하는 시설인 여수 외국인보호소에 화재가 발생해서 10명의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17명이 부상한 참사가 있었다. 인간의 목숨보다 '불법체류자'의 '도주'를 더 두려워 한 결과였다. 희생자의 가족에게 제대로 연락조차 하지 않고, 유족 동의 없이 시신을 부검하고, 부상자들에게 수갑을 채운 채 치료받게 하고, 밀폐공간에 다시 갇히는데 극도의 두려움을 호소한 부상자들을 다시 구금하는 등 사건 직후 정부의 대응으로 반인권적인 미등록 체류자 정책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지만 미등록체류자 정책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공무원통보제의무' 제도의 운용방식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출입국관리법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출입국관리법에 위반된다고 인정되는 자를 발견하면 출입국관리사무소장 등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등록 체류자가 불안정한 체류자격 때문에 인권침해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2003년 법무부, 2006년 노동부에서는 임금체불 등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구제조치를 먼저 취한 후에 통보하도록 지침을 내린 바 있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출범 직후 통보부터 우선하도록 지침을 변경하였다. 그런데 이 지침 변경으로 엉뚱하게도 출입국관리법 앞에서 다른 모든 법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야구방망이와 맥주병으로 폭행을 당한 이주노동자들이 있었다. 119가 달려왔고, 응급실로 실려 가서 간단한 응급처치만 받은 뒤에 찢어진 얼굴의 봉합수술도 받지 못하고, 경찰서를 거쳐서 이들이 간 곳은 출입국관리사무소 구금시설이었다. 이들은 미등록 체류상태였고, 경찰이 이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때린 한국인은 간단한 조사를 받고 귀가한 후였다.

식당에서 일하던 한 이주노동자가 몇 달째 임금을 받지 못해서 일을 그만두고 노동청에 진정했다. 그러나 이 노동자는 두어 달 뒤 영문도 모른 채 노동청 문 앞에서 단속돼서 외국인보호소로 보내져 강제출국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고용주가 사업장 이탈신고를 해 버렸고, 노동청 담당직원이 '불법'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한 것이다. 임금체불 민사소송이 있었다. 담당판사는 미등록인 주제에 어떻게 임금을 다 받을 생각을 하느냐며 전체 체불액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으로 합의를 권했다. 응하지 않으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하겠다고 했다.
한국사회가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외국인에게 주로 취하는 조치는 구금에 이은 강제출국이다. 그러나 구금 상태에서는 행정기관과 접촉하거나,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법 앞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피해를 보상받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결국 법무부의 출입국관리법에 대한 강력한 집행 의지로 인해 법무부 문전에서 인권은 둘째 치고 여타 법의 집행이 딱 멈추어 버리는 것이다. 모든 일에 양면이 있음을 간과한 결과이다. 미등록 이주민이라면 무슨 일을 당해도 일단 단속돼서 강제추방부터 당하는 것이 현실인 한, 이들은 임금체불 산업재해는 물론이고 협박 사기 인신매매를 당해도 법 앞에 호소하려 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범죄의 주요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즐겨보는 외화 수사 시리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미등록 체류자인 동유럽 여성들에게 강제 성매매를 시키던 범죄조직이 검거되었다. 창고 속에 숨겨둔 여성들을 어렵사리 찾아낸 수사반장은 동료들을 돌아보며 의사와 심리 상담사를 빨리 불러오라고 했다. 밀폐된 장소에 오래 갇혀 있던 여성들을 염려해서 의사를 부른 것은 그렇다 치고 심리 상담사를 부른 것은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라면 출입국관리국에 통보부터 했을 터이다.

이주와 인권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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