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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치인의 공약(空約)과 '회고적 투표'의 힘 /차재권

신공항·세종시, 국론 분열만 초래

약속 안 지킨 권력에 주권의 힘 보여줘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2-13 20:53:0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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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투표이론 중에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와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에 관한 이론이 있다. 회고적 투표란 피오리나(Morris P. Fiorina)라는 정치학자가 주창한 투표이론으로 현 정권에 대한 평가에 따라 다음 정권을 선택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에 반해 '전망적 투표'는 현 정권의 행적보다는 각 정당이 선거에서 내건 미래의 정책을 보고 투표한다는 이론이다.

2007년 말 한국의 17대 대통령 선거와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회고적 투표' 이론의 적실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참여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강한 불만이 쌓여 징벌적 성격이 강한 회고적 투표 성향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오바마가 당선된 것도 회고적 투표의 힘이란 주장이 지배적이다. 물론 '전망적 투표' 이론의 적실성을 보여준 사례들도 얼마든지 있다. 또한 최근 들어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전망적 투표' 이론의 적실성을 주장하는 견해가 더 지배적인 것도 사실이다.

대선과 총선을 2년이나 앞둔 이 시점에서 해묵은 투표이론을 들먹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부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행태가 가관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학계에서는 아직 진행형인 두 투표이론에 관한 논쟁이 현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마치 결론난 이야기처럼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의 장밋빛 공약(公約)이 결국 '공약(空約)'에 지나지 않을 것임은 한국정치사를 조금이나마 곁눈질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짐작하는 바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와 공약(空約) 남발은 그 도를 지나친 듯해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세종시 개발 문제였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탓에 현 정권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려다 지난 한해 호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온 나라를 사분오열 시켰던 그 아픈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과학벨트'와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둘러싸고 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될 형국이다. 유감스럽게도 '과학벨트' 입지 선정 논란의 희생양은 또 다시 충청도민들이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자신의 공약사항이 아니라고 손사래까지 쳐가며 말을 바꾸는가 하면 아예 대놓고 선거용 공약(空約)이었다고 고백까지 하고 있어 그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문제도 그와 한 치 다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영남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했다. 허남식 부산시장의 재선 및 3선 가도에 '동남권 신공항' 유치 공약은 일등 공신이었다. 그럼에도 신공항 유치로 갈라진 지역 민심은 아랑곳없이 김해공항 증축설을 흘려 가며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입지선정의 부담을 차기 정권으로 넘겨보려는 꼼수까지 두는 듯하다.

상황이 이러한 데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후안무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대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권력에 탐닉하는 그들 정치인들이 '전망적 투표' 이론을 맹신한다면 현실정치의 냉엄함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만이다.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며 허언을 일삼는 그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가 무엇인지 선거를 통해 보여주면 된다. 그냥 쿨한 유권자가 되자는 것이다.

과연 우리 국민이 그리고 부산 시민이 그런 '회고적 투표'를 범부의 날선 칼로 휘두를 수 있는 현명함을 갖추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역대 선거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늘 현명한 유권자는 거짓과 위선을 일삼던 허명의 정치권력을 '회고적 투표'의 잔인한 칼날로 심판해 왔다. 그래서 대선과 총선을 2년 가까이 남긴 오늘의 시점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충고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지킬 약속은 지키고, 민심을 두려워하며, 더 정직해지라고. 또 심판의 칼날을 벼르고 있을 유권자 여러분께도 충고하고 싶다. 그들 권력자들이 어떤 허언을 일삼고 있는지를 낱낱이 잊지 말고 기억해 두라고. 그 길만이 위기에 처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동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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