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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새해의 가장 큰 계획 /서진

아낌없는 내리사랑 어머니 마음처럼 나는 타인에게 그런사랑 줘 봤을까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1-28 22:17:3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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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로폼 택배 박스가 도착했다. 청주의 장모님께서 보낸 것들이다. 냉장고가 비워질 때면 반찬과 고기, 쌀 같은 걸 보내준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먹으면 된다고 해도 장모님 마음이 또 그렇지 않으신가 보다. 부산의 어머니도 갈 때마다 나물이며 생선 반찬을 바리바리 싸 주신다. 늦게 결혼했지만 삼십대 중반을 넘었는데 아직도 어머님들이 우리를 아이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새해가 되니 신년 계획을 사람들이 물어본다. 소설을 쓰고 여행도 하고…. 다른 해와 비슷한 계획을 말하고 나면 불쑥,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고 묻는다. 부모님까지는 괜찮지만 친구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도 그런 질문을 한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인지, 물을 게 없어서 묻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고3 수험생에게 어느 대학을 갈 거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강도의 질문처럼 들린다. 쏟아지는 선심성 질문공세 때문에 재수생들, 노처녀 노총각들, 백수들은 설날에 아무도 없는 곳에 숨고 싶을 것이다.

"혹시 요즘 아이를 일부러 낳지 않는 젊은이들도 있다는데 그런 경우는 아니지요?"로 시작해서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둥, 아이에게 얻는 기쁨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둥, 심지어 아이가 없으면 부부생활이 무미건조해져 헤어지기 쉽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아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단지 지구 온난화의 위협과 제대로 된 먹을거리들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가, 교육과 사회제도가 불안한 우리나라가 아이 낳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만은 점점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도 결혼한 친구들은 대부분 한두 명씩 낳았기 때문에 나도 분발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가 나의 발목을 잡을 것 같으면서도 영원한 친구가 되어줄 것 같기도 한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심사숙고 끝에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연히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전공과 직장을 선택하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도 우연하게 결정지어진다. 어쩌면 아이를 갖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세 남매의 막내다. '우연히' 얻게 된 나를 아버지는 낳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궁지에 몰릴 때마다 내게 지원을 요청하며 그 이야기를 꺼내시곤 한다. "널 낳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치?" 어머니의 배 속에서 지금의 나라는 인간이 되기 위해 무수한 정자들이 경합을 벌이는 상상을 해 본다. 기적에 가까운 확률로, 거의 우연에 가깝게 나라는 인간이 태어나서 이렇게 살고 있다.

소설가라는 직업이 워낙 사회와 떨어져 있어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없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건 때로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스스로 납득하기 전에는 결정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루곤 했다. 그래서 오랜 공부를 접고 소설가가 되고, 8년 연애 끝에 결혼을 한 모양이다. 방학 동안 초등학교 고학년인 조카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공부를 도와주러 간다. 조카가 늘 혼자 있는 게 맘에 걸려서 동생이 한 명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면 조카는 늘 이런 식이다. "엄마가 동생 낳기에는 너무 늦었대. 차라리 삼촌이 빨리 아이를 낳아. 그러면 사촌동생이 생기는 거니까."
하루가 지나도록 깜빡하고 내버려둔 택배 박스를 열었다. 차곡차곡 맛있는 갈비가 냉매와 함께 들어 있다. 꽁꽁 얼었던 것이 살짝 녹았다. 날씨가 추워서 망정이지 상할 뻔했다. 늘 그렇듯 우리 두 식구가 먹기에 많은 양이다. 세 식구, 네 식구라면 이런 건 일주일 만에 거덜 낼 수 있을 텐데, 한 달은 족히 먹겠다. 냉동실 문을 여니 일주일 전 어머니가 주신 조기 두 마리도 보인다.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줘 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본다. 그것도 평생 동안 끊임없이, 귀찮다고 구박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그것은 아내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쏟지 못할 자신의 아이에게만 쏟을 수 있는 본능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가능하겠지. 아이 계획을 묻는 사람들에게 "올해는 아마도…" 라는 대답을 했는데 "올해는 꼭" 이라는 대답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갑자기 들어버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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