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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풍경,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 /강영조

죽음과도 맞바꿀 美 기쁨 맛보면 존재의 갱신과 탐미주의자가 된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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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1-01-12 20:32:5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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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콱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과 만나고 싶어요."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에 나오는 미술품 애호가 중년 여성의 얘기다. 그 작품을 손에 넣은 사람은 모두 비명횡사했다는 저주 받은 미술품은 추리소설이나 믿거나 말거나 읽을거리에서 본 적이 있지만 정상적인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죽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도대체 죽음과 맞바꿀 예술작품이란 어떤 것일까.

예술 작품은 잘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자살한 사람은 있는 모양이다. 프랑스 작가 장 그르니에의 '섬'에 그런 사람들의 얘기가 나온다.

장 그르니에는 노르망디식과 지중해식 궁전들이 지중해를 배경으로 늘어서 있는 곳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풍경과 만난다. 그는 대리석 바닥 위에서 춤추는 태양 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그만 정신을 빼앗겨버린다. 모든 지성을 혼미하게 만드는 그 빛과 풍경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은 그는 그 풍경의 체험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기가 그곳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자기가 새롭게 탄생한 것과 같은 느낌, 아니 비로소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아름다운 풍경에서 정신이 혼미하게 된 것은 예술가적 감수성을 지닌 작가 혼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아름다운 명승지와 아름다운 해변에는 무덤들이 있다. 그 무덤들이 그곳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너무 젊은 나이에 자신들의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그 엄청난 빛을 보고 그만 질려버린 사람들의 이름을 읽을 수 있다."

엄청난 빛과 풍경에 압도되어 죽음을 선택한 젊은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는 그 젊은이들이 목숨을 던진 이유를 "위대한 풍경이란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겨울 태백산에서였다. 온 천지가 눈으로 덮여 있고, 주목 나무가 간간이 그 눈보라 속에 서 있는 풍경이었다. 눈이 내리는 하늘은 희뿌옇지만 그것은 마치 작은 방안의 은은한 간접조명처럼 따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간간이 새어나오는 햇빛 때문에 가볍게 흩날리는 눈가루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태백산 정상에서 약간 내려온 곳이었는데, 시정은 짧고 그래서 풍경은 흐릿했다. 주목 나무 뒤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오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얼굴은 바닥에 쌓인 눈이 반사되어 광채가 나고 있었고 모두 웃고 있었다. 그래선지 낙원의 주민처럼 보였다. 죽은 후에 저 세상이 있다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면 지금 죽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장 그르니에처럼 말하자면 풍경의 아름다움은 존재의 갱신을 가져온다. 풍경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체험했다면 그것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자기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제와 꼭 같은 풍경이 오늘 다르게 보였다면 그 자신은 어제의 자기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겨울 태백산에서 새로운 존재로 탄생한 셈이다. 물론 태백산의 겨울 풍경이 나로서는 감당할만 했는지 지중해의 젊은이들처럼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만 죽음과 맞바꿀 정도로 치명적인 풍경이 있다는 장 그르니에의 얘기가 거짓이거나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은 알았다. 아무튼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풍경의 맛을 겨울 태백산에서 알게 되었다. 한 번 맛을 본 그 기쁨을 잊을 수 없어서 나는 결국 풍경의 중독자가 되었다.

최순우는 그 여성분이 그 뒤에 아름다운 작품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는지 어땠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짐작건대 아마 잃어버린 맛을 찾는 미식가처럼 끊임없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찾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예술작품이든 풍경이든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행동은 치명상을 입을 때까지 계속된다. 정신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그 어떤 것보다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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