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신년운수 /배유안

하늘이 날 돕도록 스스로 날 돕는 것, 재수 좋은 한 해 보내는 최고의 방법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1-07 21:31:30
  •  |  본지 23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유치한 거지만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닐 10대 때에는 소위 명언이나 명문장 등을 나만의 공책(특별한 비밀노트가 아니고 그 시절엔 대부분 그런 거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이나 책상 앞에 적어놓고 감동으로 가슴 벅차하고 어쭙잖은 결심 같은 것을 하곤 했다. 삶의 절망을 경험해 보지도 않고 푸쉬킨의 시구(詩句) '삶이 너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라든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대사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 에 가슴이 저렸던 것은 어떻게 된 것이며, 아직 연애할 나이도 못 된 때에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같은 황동규의 시구에 매혹됐던 것은 또 어찌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런 글들을 통해 세상은 절망할 것들이 많으며, 그래도 내일의 새로운 희망을 가져야 하며, 사랑에 아파하고 그리움을 일상처럼 안고 사는 게 인생이 아닐까 하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 될 세상을 나름대로 짐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는 '절망'이나 '아프다' 같은 말을 마치 '황홀하다'는 말과 동일어인 양 착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미리 감격하고 미리 마음을 다잡고 미리 설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30대쯤, 정작 세상살이에 이리저리 부대껴 절망하고, 그야말로 아플 때에는 예전에 그랬던 걸 문득 기억해내고 '알지도 못하면서 참 유치했었다'며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같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유치하다는 판정과 함께 다시 잊혀졌다.

그런데 또 한세월이 지나 요즈음은 일상의 작은 마디마디에서 그 유치한 기억 속의 글 조각들이 자꾸 되새겨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도 예전에 맛보지 못했던 고영양가를 가지고서. 그 중에 하나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뻔하다 못해 손이 오그라들 것 같은 글귀이다. 요즘처럼 '복'이라는 말을 넘치도록 주고받을 무렵에는 그야말로 '명언'으로 되새기게 된다. '하늘은 스스로 복을 만드는 자에게 복을 준다'로 해석이 되는 것이다.

바다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덕택에 자주 일출과 월출 장면을 보는데 그때마다 나약한 인간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나는 나도 모르게 소원을 빌고 있다. 받고 싶은 복이나 이루고 싶은 소원은 수없이 많지만 양심상 하나만 고르는데도 몇 개가 늘 추신으로 붙는다. 하지만 마무리는 '그걸 위해 해와 달과 하늘이 나를 돕도록 내가 무엇을 도와야 하지?' 로 한다.

매년 1월 1일에는 마루에 신문 넓게 펼쳐 놓고 그해 각 장르의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는 것이 큰 기쁨인데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 당선작을 위해 작가가 스스로를 지독하게 도왔구나 하는 것이다. 이걸 발견하는 기쁨과 자극 때문에 당선작들을 훑는지도 모른다.
복이라는 말 못지않게 연초에 자주 쓰는 말이 재수라는 말이다. 할머니들이 부적을 써 오는 것도 대개 재수 부적이다. 언젠가 무심결에 과속으로 달리다가 경찰에 딱 걸려 딱지를 떼인 적이 있다. 과속카메라가 없던 때다. 몇 만원의 돈이 하도 애통하여 "오늘 정말 재수 없어"라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나에게 중학생이었던 아들이 말했다. "엄마, 그건 재수가 없는 게 아니라 엄마가 잘못한 거잖아요." 한순간 아들 앞에서 무지 부끄러웠지만 그때 깨달았다. 대부분의 재수 없는 일은 내가 만든 거라는 걸. 그러니까 재수 좋은 일도 대부분 내가 만드는 거였다. 재수 좋게 만들기, 그 역시 하늘이 나를 돕도록 스스로 나를 돕는 일이었다.

올해, 나는 나를 엄청 돕고 싶다. 하늘이 돕지 않을 수 없도록. 헤르만 헤세는 경건한 선교사 집안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신학교에 다니던 중 "시인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 며 신학교를 뛰쳐나와 시를 썼다. 그의 수많은 시와 소설에 젊은 날의 종교적 혹은 인간적 성찰들이 진하게 배여 있다. 그 문학적 성취도 성취지만 나는 헤세가 스물이 되기 전에 자신이 죽어도 해야 할 일을 찾았다는 게 부럽다. 스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죽어도 이걸 해야겠다 싶은 거, 아니면 죽어도 이걸 써야겠다 싶은 거 발견한다면 올해가 얼마나 진할 것인가? 그야말로 신년운수 대통 아닌가? 내가 나를 어떻게 도와야 하나?

동화작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민홍철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
부울경 국회의원에 듣는다
이채익 행안위 한국당 간사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11월의 노래
‘집권 2년 차’ 문재인 대통령이 할 일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사라진 가야문명의 귀환을 고대하며
통영에서 반드시 불어야 할 훈풍
기고 [전체보기]
세계인문학포럼, 부산이 이룬 작은 성공 /이지훈
고령자 이동권 확보, 면허 반납 지름길 /노유진
기자수첩 [전체보기]
부울경 위원 없는 중도위 /김영록
이기주의가 낳은 슬럼 /황윤정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청산리 벽계수야, 저 바다에 가보자꾸나
생활 SOC: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나는 할 말이 없데이…’
‘미스터 션샤인’ 오해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유치원 공공성 확보하라 /조민희
재정분권 2단계 엄정 대응을 /김태경
도청도설 [전체보기]
힐만과 로이스터
“나 누군 줄 아냐”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과 두 분의 시인
고요한 물
박무성 칼럼 [전체보기]
국민의 눈높이
‘밥 한 공기 300원’의 미래
사설 [전체보기]
자치경찰제, 치안 사각지대 없도록 면밀한 준비를
여·야·정 협치 합의 첫 실무회동부터 삐걱대서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수술대 오른 사회서비스(보육·교육·의료·요양) 공공성
아동수당 보편주의 원칙과 은수미 성남시장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시나브로 다가온 한반도의 봄
시민 행복과 다복동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

무료만화 &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