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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옛사람들의 새봄맞이 /신명호

절기상 동짓달을 새 희망의 달 여겨

올 입춘에 쓸 춘첩자의 글귀 미리 생각해보자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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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1-01-05 20:30:17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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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해가 가장 짧은 달은 음력 11월인 동짓달이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冬至)도 음력 11월에 들어 있다. 음력 10월을 전후로 겨울이 시작되면서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린다. 그러면서 밤이 길어지고 해가 짧아진다.

옛사람들에게 해는 우주 생명력의 원천으로 간주되었다. 그러기에 해가 짧아지는 것은 우주 생명력이 약화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언뜻 생각하면 동짓달은 암흑과 절망이 커가는 달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바로 그 동짓달을 새로운 희망과 도약의 달로 간주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시인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란 작품을 남겼는데, 이런 내용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임 오신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이 짧은 시에서 시인은 동짓달 기나긴 밤을 암흑과 절망의 밤이 아니라 사랑하는 임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밤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동짓달은 주역의 60괘에서 복괘(復卦)에 해당한다. 복괘는 곤(坤, ☷) 아래에 진(震, ☳)이 있는 형상이다. 즉 맨 아래에 양효(陽爻)가 하나 있고 그 위로 5개의 음효(陰爻)가 있는 형상이 복괘이다. 음효는 어둠과 절망을 상징하고 양효는 빛과 희망을 상징한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복괘는 실낱 같은 빛과 희망 위에 여러 개의 어둠과 절망이 첩첩이 덮여 있는 형상이다. 바로 이런 복괘의 형상에서 옛사람들은 새로운 희망과 도약의 가능성을 찾아냈다. 비록 양효가 하나뿐이지만 그 하나의 양효를 발판으로 점점 더 많은 양효를 길러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절기만으로 보면 동짓달 다음인 음력 12월에 소한, 대한이 들어 있다. 소한, 대한 때는 동지 때보다 훨씬 춥다. 그래서 체감 상 음력 12월은 동짓달 11월보다 더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옛사람들은 음력 12월에서 동짓달보다 더 큰 빛과 희망을 찾았다. 바로 새봄이 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음력 12월은 주역의 60괘에서 임괘(臨卦)에 해당한다. 임괘는 곤(坤, ☷) 아래에 택(澤, ☱)이 있는 형상이다. 동짓달인 복괘와 비교하면 양효가 하나 더 많다. 음력 12월이 지나면서 새봄과 새해가 한층 가까워진다. 새해의 정월을 상징하는 괘는 임괘보다 양효가 하나 더 늘어난 태괘(泰卦)이다. 곤(坤, ☷) 아래에 건(乾, ☰)이 있는 형상이 태괘이다.

60괘의 형상으로 음력 11월, 12월 그리고 정월을 보면 11월은 양효가 하나, 12월은 양효가 둘 그리고 정월은 양효가 셋이다. 그래서 11월을 일양(一陽), 12월을 이양(二陽), 정월을 삼양(三陽)이라고 하기도 했다. 삼양을 전후로 새봄을 알리는 입춘이 들어 있다. 새봄이 되면 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뚫고 새 생명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입춘 날에 옛사람들은 새봄의 새 생명들을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경축행사를 벌였다. 가장 유명한 것이 이른바 춘번자(春幡子) 또는 춘첩자(春帖子)라는 것을 대문이나 기둥에 붙이는 행사였다.
춘번자 또는 춘첩자는 입춘이 되기 전 새봄을 맞이하는 시를 미리 지어 놓았다가 입춘 날에 그것을 종이에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붙인 것이었다. 춘첩자에 쓰기 위한 시는 영상시(迎祥詩) 또는 연상시(延祥詩)라고 하였다. 새 봄의 상서로움을 맞이하는 시라는 뜻이었다. 나라에서는 뛰어난 학자의 영상시를 받아 춘번자나 춘첩자로 만들어 대궐 문이나 기둥에 붙였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같은 글로 새 봄의 상서로움을 맞이하고자 했다.

올 신묘년 입춘에는 춘첩자 하나 만들어 기둥에 붙이고 아이들과 함께 대자연으로 나가 새봄을 맞으면 어떨까 싶다. 그때 대자연 속에서 이런 노래를 듣고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김태오 작사, 박태현 작곡)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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