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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경계성 사회 /김철권

예측 불가능하고 남 탓만 하는 사회, 법·도덕 준수로 정상 모습 되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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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12-27 21:36:1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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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동안의 일정으로 사하라 사막을 다녀왔다. 극한 상황에 자신을 던져놓고 인생에서 무엇이 알맹이고 무엇이 쭉정이인지를 깨닫기 위해서였다. 산이 아닌 사막을 택한 것은 삶의 대부분이, 목표가 보이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목표가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건너는 편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삶의 목표가 애매모호해지고 끝은 보이지 않고 문득 내 자신이 길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사막에서 길을 묻기 위해 여행을 강행했다. 그리고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GPS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내비게이션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의 사막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GPS와 내비게이션이 손상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병이 있다. 바로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병이다. 서구사회에서 아주 흔한 병이며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가파른 속도로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 병명이 경계성인 이유는 어떻게 보면 신경증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정신병 같기도 하여 도대체 그 정체를 알 수 없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병은 기분, 행동, 대인관계, 자기 이미지, 주체성 등 모든 면에서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워 항상 위기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상시에도 기분의 변동이 심하여 어떤 날은 기분이 좋다가도 어떤 날은 우울감과 공허감을 호소하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한다. 대인관계 역시 불안정하고 강렬하여 어떤 날은 간이라도 떼어줄 것 같이 의존하다가 어떤 날은 철천지원수처럼 대한다. 혼자 있는 것을 참지 못하며 행동 역시 매우 돌발적이고 충동적이다. 이 병의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어린 시절 부모의 훈육과정에서 일관성이 없는 것이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런 환자를 치료할 때는 원칙과 한계를 설정한 후 장기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고 매사 남의 탓을 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도 경계성 인격장애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사회의 모든 면에서 위기상태를 보인다. 기존의 규범과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도덕과 규범이 자리 잡기도 전에 또 다른 변화가 겹쳐지는 양상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폭력적으로 변하고 선생들은 연금 탈 연수만 채우기를 기다릴 정도로 교육현장은 붕괴되고 있다. 가정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자녀들을 학교에서 교육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부모들은 학교에 모든 것을 떠넘긴다.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 도리와 예의는 집에서 배우는 것이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자신의 의무태만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학교와 선생을 비난한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법과 질서인데 떼를 지어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공권력을 조롱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약자와 정의를 위해서는 폭력도 허용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저항운동의 정신은 이 사회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걸어다니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시정잡배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사당에서 흉기를 들고 난투극을 벌인다. 종교계도 자신들이 믿는 신을 앞세워 힘을 과시한다.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편을 나누어 싸우고 또 싸운다. 모든 것은 남의 탓이고 내 탓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이 사회에서 존경받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누구도 쉽게 말하기 어려운 사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을 상실해 버린 사회, 사람들의 가슴에 분노와 증오와 냉소가 가득하고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는 사회, 가히 경계성 사회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를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원칙을 세우고 한계를 설정하는 일이듯 경계성 사회를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시 법과 질서, 도덕과 윤리규범을 따르고 지키는 일이다. 법이 잘못되었더라도 도덕과 윤리규범이 구태의연하고 시대에 맞지 않더라도, 그것을 대체할 만한 다른 것이 나올 때까지는 그래도 묵묵히 지키고 따라야 한다. 그게 시민의 도리이고 국민의 의무이다.

동아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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