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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정처 없어 내버려진 50만 국민 /강재호

IMF 금융위기 이후 거주지 일정치 않아 주민등록 직권말소된 대부분은 노숙 중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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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12-26 20:25:05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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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일본의 동경시정조사회로부터 한국에서는 행정 당국이 주민의 정보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에 관해 글을 좀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올 여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사라진 노인' 문제의 대책을 다각도로 검토하면서 이에 관한 다른 나라의 실태와 제도를 알아보려는 취지에서였다. 사망신고가 없어 행정적으로는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 등을 지급해 왔는데, 이를 수령하고 있어야 할 노인이 실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경우가 각지에서 더러 일어나 크게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며 지난 60년 이상 그 전선에 젊은이들을 강제로 붙박이고 있는 한국에서는 행정 당국이 주민의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도 우리나라가 주민들의 정보를 샅샅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시·군·구의 장은 주민등록법에 따라 주민등록을 신고해야 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신고하지 않거나 신고한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에는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그에게 사실대로 신고할 것을 다그치거나 공고하고, 그래도 바르게 신고하지 않으면 직권으로 그 등록을 말소해 왔다. 주민등록을 주민의 거주 사실에 따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이를 크고 작은 여러 정책의 기반으로 삼기 때문에 우리 행정에서는 특히 중히 여겨졌다. 그래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은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장애인복지에서 제외되고, 국민기초생활보장과 초중등교육에서 멀어지며, 공직선거 주민투표 주민소환에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공무원시험에도 응시할 수 없었다.

공직선거를 앞두고 선거권을 부정하게 얻으려거나 자녀들을 평판이 좋은 학구의 학교에 넣으려거나 또는 개발 예정지의 보상을 노리고 이루어지곤 하던 실태를 수반하지 않는 음험한 가공의 전입 등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직권말소는 유용했다. 그런데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은 이처럼 불이익을 겹겹이 받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사실상 내버려졌다. 그 결과 직권말소는 행정의 편의를 위해서는 안성맞춤이었지만 국민으로서의 기본권과 인류 보편의 인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양산해 왔다.

이들은 2007년 5월 정부가 직권말소를 크게 자제하기 시작할 무렵 65만 명에 이르렀다. 이어 2009년 10월 이명박 정부는 직권말소를 사실상 폐지하고 새로이 거주불명등록을 도입하고는, 2010년 9월 현재 주민등록이 말소된 51만7000여 명이 마지막으로 주민등록지로 신고한 곳을 관할하는 읍면동주민센터를 행정상 관리주소로 하여 지난 10월 시·군·구의 장이 이들을 일제히 거주불명등록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이들을 사회적 안전망 밖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고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 중에서 관계 기관에 국민건강보험 등을 이용하겠다고 신청하는 이는 거의 없단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이들을 가출 등으로 인해 장기간 거주지가 불명한 사람, 해외 이주자나 국적 상실자로서 신고하지 않고 해외로 떠난 사람,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는데 법적으로 그렇게 처리되지 않은 사람, 밀출국 등으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 또는 이중으로 주민등록을 하여 그 중의 일방이 말소된 사람 등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빈곤문제연구소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이들의 대부분은 1997년의 금융위기 이후 채무변제의 독촉에 시달려 집을 나와 길거리 등에서 노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아 내버려 왔던 사람들을 이제는 정처가 없더라도 행정 장부로는 되살려 놓았지만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살아 있더라도 거주지가 행정상으로 불명한 이들에게는 국민으로서 받아야 할 최소한의 공공서비스도 닿지 않고 있다. 우리 모두 허장성세로 선진을 읊조리고 국격을 부풀려 뽐낼 것이 아니라 5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세밑 엄동설한의 길모퉁이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배회하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에 눈뜨자.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사외 필자의 견해는 본지의 제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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