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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자기 터전을 가진 인문학 /이택광

토론거리 넘쳤던 월드컵과 촛불집회…이론화·보편화하면 인문학 부활 밑천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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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12-15 20:28:45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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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그리운 것이 유학시절 경험했던 독서토론회와 세미나 모임이다. 책 한 권을 들고 또는 정치적이거나 철학적인 주제를 놓고 저녁 무렵에 삼삼오오 모여 연사의 발제를 듣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모임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이 추억을 한국에서도 만들어보기 위해 나도 개인적으로 올해 초부터 모 계간지와 힘을 합쳐서 게릴라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런 모임들이 턱 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인문학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출발한다. 어떤 책을 읽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매개자의 관점과 입장이 개입한다. 훈고학적 경향이 강한 한국의 인문학계는 이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지만, 특이성에 기반을 둔 인문학은 매개자의 개입 자체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서토론회나 세미나는 인문학을 위한 부수적 요소라기보다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보아야하겠다.

인문학은 말을 나누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아니지만, 어떤 이는 북유럽에서 합리적인 인문학이 발달한 까닭으로 길고 긴 겨울밤을 꼽았다. 오후 3시면 지평선 너머로 떨어져 버리는 태양 때문에 북유럽인들은 책 읽고 토론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인문학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과거에 스위스 친구가 들려준 농담 중에 자기나라 사람들은 무인도에 난파되어도 정치경제를 토론하느라 구조선이 오는 줄도 모른다는 것이 있었는데, 얼마나 이런 '환경론'이 타당성을 갖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문학의 발달이 말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인문학의 관건은 자신의 터전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칸트의 말처럼, 모든 학문이 고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듯이, 인문학은 보편성에 대비해서 특이성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인문학이 보편성을 무의미하다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해야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은 자신의 터전에서 일구어 낸 특이성을 보편화하는 과정에서 발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이야기한 것도 바로 이 문제였다. 당시에 이 시인은 그리스 로마의 예술만을 고전이라고 숭앙하던 프랑스 지식계의 풍토에 개탄하면서 당시에 근대화의 과정에 놓여 있던 소란스러운 파리의 일상을 소재로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낼 것을 주문했다. 일상이라는 말은 삶의 처소에 대한 민주주의를 전제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은 이런 파리에서 '군중'이라는 아메바 같은 존재를 발견하고 경이로워했다. 소비주의가 제공하는 달콤한 쾌락에 취해 있으면서도 언제든지 메시아적 순간에 깨어나서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계기들을 감추고 있는 이 군중이라는 '판타스마고리아'에서 벤야민은 변화의 가능성을 읽어냈다고 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도 바야흐로 19세기 파리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군중의 시대가 전면화됐다고 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도래한 소비주의의 시대는 90년대부터 잠복해 있던 것이고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본격화된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은 이렇게 수면 아래에 있던 현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기표로 호명되는 순간이었고, 2008년 촛불은 도시중간계급이 '시민사회'라는 이름으로 이 기표를 전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인문학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이런 변화의 와중에 있는 우리 자신의 터전이다. 이 터전을 이론화하고 보편화할 때에야 비로소 그동안 학수고대하던 우리의 인문학이 현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연 이런 인문학을 지금 한국의 대학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지난 10여 년 간 한국의 대학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의 운명을 마치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역설처럼 만들어 버렸다. 국가를 소멸시키는 것을 국익으로 삼는 논리가 그대로 대학에 들어온 것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공격적 대학경영이다. 암울한 진단이지만, 사고의 전환이 없다면, 한국의 인문학은 붕괴될지도 모를 일이다.

경희대 영미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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