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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한 해의 결말 뒤집기 /서진

세밑 앞두고 되돌아본 한해, 후회·아쉬움 가득

충실한 내년준비가 최상의 해법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10 20:31:06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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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쓰던 장편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마음에 들 때보다는 마음에 안 들 때가 더 많다. 딱히 뭐가 잘못되었는지 꼬집을 수는 없는데 중요한 걸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문장을 다듬어보고, 등장인물도 바꾸어보고, 사건을 변형시켜도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그럴 때엔 마지막 수단으로 결말을 뒤집는다.

가령, 주인공이 죽는 것이 결말이라면 살린다. 악당이 승리하는 결말이라면 패배하게 만들고, 두 연인이 사랑에 성공하는 결말이라면 실패하도록 바꾼다. 그러면 도미노 효과로 인해 결말에서부터 시작까지 역순서로 소설을 고쳐야 한다. 주인공이 죽는 이유도 만들어야 하고, 악당이 패배하는 원인도 넣어야 하고, 연인이 사랑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근거도 곳곳에 심어두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장편소설을 고치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 어디쯤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설사 파악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결말도 바꿨는데 다른 걸 바꾸는 건 별 일도 아니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배짱이 생긴다. 어차피 소설은 내 손으로 쓴 것인데 힘들게 원고지 1000매를 채웠다고 바꾸기 힘들다는 건 떼를 쓰는 아이의 심정과 비슷한 것이다.

소설가가 만든 세계란 고작 문자로 채워져 있다. 그 세계를 고치는 건 워드 프로세서의 타이핑만으로 가능한데,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지금까지 써 놨던 것이 아까워서, 앞에 썼던 것도 망칠까봐, 귀찮아서….

달력을 보니 벌써 12월이다. 중앙동 작업실에서 광복동 쪽으로 걸으니 어느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난다. 백화점에도, 거리에도 트리와 불빛이 반짝거린다. 다이어리는 낡아서 끝부분만 남았다. 수능 점수가 발표 났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 누군가는 울고 있겠구나)

올해가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니 문득 올해의 결말을 뒤집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올 초에 바랐던 2010년의 결말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멋진 장편소설도 발표하고, 통장의 액수도 넉넉히 불어나 있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여행도 다녀왔어야 했다.

그래 까짓것, 소설처럼 내가 가장 원했던 결말로 바꾸어 버리자.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생각해본다. 실패했던 소설은 처음부터 시도하지 말았어야 했고, 시간을 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해야 했고, 호주나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야 했으며, 모 출판사와 일을 하지 말아야 했고, 수영을 더 해야 했고, 일본어나 기타를 더 배워야 했고…. 이런 식으로 죽죽 거슬러 올라가 2010년의 초반까지 '내가 했어야 했거나,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떠올려 본다.

소설을 고치는 것처럼 그때 그때의 잘못을 고칠 수 있다면 과연 원하는 결말을 만들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인생이란 소설과는 달라서 되돌려 다시 쓸 수가 없다. 단지 한 해가 다 지나버린 다음에야 되돌아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내년 연말에도 결말을 바꾸고 싶어 할 게 틀림없다. 12월에 필요한 건 올해의 마무리가 아니라 내년 연말을 대비한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일 년이란 시간은 어릴 때에는 굉장히 천천히 흐르는 것 같지만 어른이 될수록 금방 지나가 버린다.

어느 책에서 열 살 아이가 느끼는 1년이 10분의1 이라면 마흔 살 어른이 느끼는 1년은 40분의1 이라는 이야기를 읽었다. 다행히 마흔 살 어른은 마흔 번의 시행착오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내년에도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겠지만, 올해보다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은 소설처럼 결말 뒤집기를 할 수 없으니 1년 뒤의 결말을 미리 상상해놓은 뒤에,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이 문자로 채워져 있다면 인생은 결정으로 채워져 있다. 이왕이면 새롭고 용기있는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했던 일이 아까워서, 앞으로 할 일을 망칠까봐, 귀찮아서… 등의 이유로 작년과 비슷하게 산다면 결말이 나쁜 소설처럼 될 것이 뻔하다. 그리고 내년에 원하는 결말을 새로 구입한 다이어리의 말미에 적어놓아야 하겠다. 잊을만 하면 다시 확인해 볼 수 있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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