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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올레길 열풍과 로드무비의 추억 /주유신

도시 벗어나 자연의 재발견, 나만의 길 찾아 이제 떠나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08 20:54:3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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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께 부터 도보 여행 코스로 개발되기 시작한 제주 올레길이 예상을 초월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몇 가지 사실만 들어봐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최근 들어 최고의 히트 상품 중의 하나가 '워킹화'라면, 출판계의 히트 상품은 걷기와 관련된 책일 것이다. 올해의 경우 제주 올레 탐방객이 50여만 명에 이르고 그 숫자는 2015년에 이르면 무려 17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더더구나 이러한 대대적인 성공은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벤치마킹되면서 '지리산 둘레길', '남해 지겟길', '무등산 옛길' 등등, 전국에 걸쳐 수많은 탐방로 조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올레길 열풍이 낳은 사회적 신드롬 중에서도 최고의 성과는 바로 '걷기의 재발견'일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희구하면서, 향수에 젖은 채로, 느린 삶을 꿈꾸면서 자발적으로 기나긴 길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필자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무모하고 때로는 허무한 여정을 지켜보면서 눈물짓거나 분노하게 만들던 몇 편의 로드무비들이 떠오른다.

로드무비의 기원을 따지자면 고대 그리스 시대에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일리아스'나 '오디세이'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로드무비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오즈의 마법사'(1939) 이후 수많은 영화들이 '길 위의 삶'을 서사화해왔다. 하지만 로드무비가 중요한 영화 장르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60년대 말의 미국이다. 베트남 전쟁과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등을 겪으면서 반전 운동, 히피 운동, 페미니즘 운동, 흑인인권 운동으로 소용돌이치던 그 시기에 정치적 저항과 문화적 반역은 다양하면서도 격렬한 방식으로 표출되었고 영화 역시 예외일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와 '이지 라이더'(1969) 등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로드무비들은 미국의 보수적인 사회 규범이나 획일화된 문화적 정체성을 거부하면서 반영웅적인 위반과 반문화적인 감수성을 매혹적으로 펼쳐 보인다. 한마디로 '환멸'에서 시작된 그들의 여행은 때로는 사회적 정상성이라는 범주를 교란하고 때로는 문화적 친밀성이라는 경계를 넘나들면서 모든 지배적인 것들을 비판하거나 억압적 환경을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스러운 몸부림이 된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적 비전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것이고 그들을 둘러싼 완고하고 폭력적인 현실은 결국 그 여행을 목적 없고 절망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들 속에는 결코 잊지 못할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들이 존재하는데, 이 장면들의 많은 부분은 인간 육체의 기계화된 확장으로서 우리를 더 멀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자동차의 가동성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주인공들은 무미건조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탈출하거나 인간을 가두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재발견하고 거친 세계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삼포 가는 길'(1975)이나 '서편제'(1993)와 같은 한국의 로드무비는 훨씬 더 정적인 흐름과 고통의 징후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주인공들은 대체로 저마다의 사회적 결함이나 인간적인 결함을 안고 살아가면서 돌아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어 유랑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길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집이라는 안식처를 가질 수 없는 고통과 불안정함을 표상하는 공간이라면, 민족적인 차원에서는 식민지, 전쟁, 분단의 역사로 인해 상처받고 마비된 주체성을 상징하는 은유가 된다. 또한 길 위의 여행자들은 길을 집으로 삼으면서 유사 가족을 형성하지만 그 유대는 쉽사리 깨어지고 결국 비극적인 이별로 귀결되면서 분단 현실을 환기시키는 알레고리의 기능을 한다.

이런 몇 편의 영화들에서 볼 수 있듯이 로드무비의 핵심적 모티브라고 할 수 있는 길은 삶의 여정, 욕망의 움직임 그리고 자유와 운명이 제공하는 매혹, 이 모든 것의 상연장인 셈이다. 이제 나만의 길을 찾고 나아가 그 발걸음을 디자인하는 시도, 더 늦기 전에 서둘러 볼 일이다.

영산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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