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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보비를 생각하며 /하창식

암 투병 엄마위해 소나타 연습하고 폭탄 테러 피해로 짧은 생애 마감

보비같은 내 이웃 둘러봐야할 시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03 20:45:18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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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 오클라호마 시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에서 30년 동안 피아노를 가르쳐 온 음악교사입니다. 어느 날 보비가 찾아왔습니다. 피아노를 쳐본 경험이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음악적 소양도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엄마를 위해 피아노를 꼭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착한 학생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는 보비를 보면서 '이런 학생을 계속 가르쳐야 하나?' 하는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만 두게 할까'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래도 보비는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해마다 12월엔, 내게 피아노를 배운 학생들의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출석만은 빠짐없이 해 온 보비를 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주회 며칠 전부터 보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없어 포기하였나 보다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연주회를 망치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해왔던 나는 보비의 결석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동안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엔 제법 내로라하는 연주자들로 성공한 경우도 적지 않았기에, 그동안 쌓아온 내 명성에 먹칠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연주회 당일, 보비가 보기에도 창피할 정도로 꾀죄죄한 옷을 입은 채로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왕 참가하기로 했으면 옷이나 제대로 챙겨 입고 오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불만스런 얼굴로 보비를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무대에 오른 보비는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앉았습니다. 엄마에게 들려드리겠다는 인사말을 덧붙였습니다. 나는 정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2악장 주제곡을 연주하였습니다. 연주한 학생이 보비가 맞나 하며 놀랄 정도로 멋진 연주였습니다. 보비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청중석에 앉아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무대 위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보비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보비가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젠 엄마도 제 연주를 들으실 수 있겠지요? 엄마를 위해서 열심히 연주했어요."

그렇습니다. 보비의 엄마는 그동안 암으로 투병하다 연주회 며칠 전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보비는 엄마의 장례식 때문에 결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보비의 엄마는, 아들의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귀가 멀어 들을 수 없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비는 믿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보비를 더욱 힘껏 안아주었습니다.

그날 이후에도 보비는 하늘에 계신 제 엄마를 위해 열심히 피아노를 쳤습니다. 하지만, 이젠 보비의 연주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습니다. 1995년 4월 19일 오클라호마 시 소재 알프레드 P. 뮤러 연방정부청사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현장에서 18명의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보비는 하늘나라의 엄마 곁으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위 이야기는,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던 칼럼 한 토막을 내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실화를 전하면서 그 칼럼니스트는, 다음과 같은 멘트로 끝을 맺었다. "우리 주위에도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어야 할, 귀가 먼 이웃은 없는지 둘러봅시다."
보비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가슴속으로 슬픔과 안타까움의 파도가 짠하게 밀려왔다. 그리고 문득 내 이웃 어디엔가 또 다른 보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짧았던 그의 생애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귀가 먼 엄마를 위해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열심히 연습했던 어린 보비, 그 아이의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니 매서운 이 겨울 추위도 한결 견딜 만하다.

12월이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이다. 자신의 삶은 물론, 추운 겨울나기가 어려워 우리들의 따뜻한 손길을 특별히 필요로 하는 이웃이 내 주위엔 없는지 둘러보아야 할 시간이다. 아무리 베풀어도 모자람이 없는 게 사랑이다.

부산대 고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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