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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그 생명의 푸른 덩굴을 따라가며 /김수우

반생태적 문명 속에 사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존재 이유가

공생에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26 21:09:4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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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주변은 온통 잠언으로 가득하다. 가까운 산의 불긋한 단풍숲이 하나의 심연으로 다가온다. 검은 타이어에 쓸려가는 노오란 은행잎도 큰 화두가 되고, 열심히 제 가지를 비우는 나무들도 오히려 존엄해 보인다. 문득 마주친 길고양이 눈빛도 선사의 말씀처럼 여겨지는데 느닷없는 연평도 포격은 늦가을 정취를 우울하게 한다. 소통이 정말 그렇게 힘든 건가, 우리가 그렇게 머나먼 사람들이었던가.

지난주엔 백년어서원 식구들과 도요마을에 소풍을 갔다. 최영철 시인과 조명숙 작가가 3년내 끙끙거린 산비탈 농사이야기를 듣고 왔다. 농사가 얼마나 본래적인지 부부가 같이 체험해보고 싶었다는 고백이 참 따뜻했다. 그들만의 작은 농사는 생명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정신의 모험에 다름 아니다. 농사는 우주 안에 함께 순리를 이루고 있는 타자를 발견하게 한다. 동시에 나를 존재하게 하는 숨은 힘, 바로 공생을 깨닫는 일이 아닐까.

경쟁만이 생존방식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성장주의와 실용주의는 반생태적 문명을, 무수한 정보는 과도한 감정 방출과 다변을 낳고 말았다. 그렇기에 '나무를 심는 사람'에서 나무를 심는 양치기 노인 부피에와 그의 침묵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물과 숲과 사람의 순환이 끊긴 황무지에 녹색의 대서사시를 쓰는 침묵 말이다. 그 자체로 고결한 수행이었던 철저한 침묵은 모든 것을 돌아오게 하는 기적이 되었다. 강한 심장과 부지런한 손만이 윤리가 배제된 무한경쟁과 그 특유의 오만함을 극복하게 하는 걸까.

지상의 모든 생명은 '공생'이라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린 마굴리스의 '공생진화론'은 공생이 새로운 생명을 낳는 원천임을 강조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식물은 수많은 세포들이 수십억 년 공생한 결과이며, 세포 역시 여러 고대 세균들이 공생 진화하면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하여 공생은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이다. 이미 서로가 깊은 지층으로 형성된 무늬들이다.

당연히 지구 자체도 수많은 생물이 결합된 하나의 공생자이다. 풀잎들, 천년 고목들, 사람들 그리고 낯선 꿈들이 함께 모여 이 별을 구성하고 있다. 기쁨도 고통도 서로의 존재를 위한 준비인 것이다. 공생을 지향하지 못한다면 개인의 진보나 끼리끼리의 연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공생을 실천해내지 못한다면 위대한 정신의 뼈들도 추한 해골일 뿐이다. 떠남도 돌아옴도 다 어울려 흘러가는 삶의 현상이 아니겠는가. 죽음은 공생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며, 태어남 또한 공생으로 돌아오는 길목인 것이다.

우린 모두 등불을 켜들고 있는 자들이다. 이 불빛이 내 앞을 비추는 게 아니라, 타자의 앞을 비추기 위한 것이라면 어떨까. 초겨울의 밤별처럼 말이다. 생명성이란 공생할 수 있는 힘이며, 함께 은하수의 반짝이는 결을 이루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농사부터 가르쳐야 할 것 같다. 농사는 생물다양성이라는 그물을 이해하는 일이고 공생의 가치를 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 운동장마다, 도심의 작은 모퉁이, 아니면 화분에라도 스스로 씨앗을 심고 가꾸게 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이는 묵묵하고 끊임없던 부피에의 작업이며, 일상에서 기적을 체험하는 일이며, 동시에 제 존재감을 위한 인문학적 실천이다. 21세기 인류가 살아남는 방법은 경쟁이 아닌 공생으로, 많은 실천이 제시되는 중이다. 특히 우리 전통엔 두레라는 탁월한 공생사상이 있지 않았던가. 공동체적 삶을 유지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이 마을문화는 공존의 관계를 잘 이해한 형태이다.
작은 바람에도 낙엽들이 발끝을 세우고 온몸으로 달려간다. 누군가의 끊임없는 목소리 같다. 진정한 자유는 상대방을 수용하는 마음의 크기에 있지 않을까. 세포는 생명 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기원과 목적지를 생각해보라. 그 생명의 푸른 덩굴이 얼마나 유쾌하고 장엄할 것인가. "매듭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라. 매듭이 풀어질 때까지"라는 게리 스나이더의 말은 많은 것을 함유하고 있다. 자꾸 어긋나는 문제 속으로, 나와 다른 모든 관계 속으로 고개 숙여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더 낮아질 때 동시대에 나와 공생하고 있는 무수한 시선들과 더 깊이 마주칠 수 있을 것이므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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