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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권위 사태의 신제도주의적 감상법 /차재권

스스로 정권 눈치보는 위원회 독립성 잃어

혼란 부르기 전에 MB정부 인식 바꿔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23 21:19:1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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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원의 줄사퇴로 내홍을 앓고 있다.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적인 조직운영과 반인권적인 결정들에 반발, 일부 진보 성향의 상임·비상임위원들이 동반 사퇴하면서 사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15일에는 전문·자문·상담위원 등 61명이 대거 사퇴를 결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갑작스레 이런 사단이 난 것인가? 인권위 사태의 본말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이번 사태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예견되어 온 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 직속기구화를 추진한 바 있다. 물론 야당과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홀대는 정권 출범 이후 대대적인 인력 축소와 비인권전문가의 위원장 임명, 그리고 보수 성향 인사 중심의 조직 재정비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인권기구의 독립성에 대한 정권 차원의 도전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대부분의 인권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성토하듯 인권위 스스로가 정권의 눈치나 살피는 한심한 조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이념과 자유경쟁에 입각한 시장경제질서가 발달한 국가일수록 경제의 근간이 되는 통화신용정책은 물론 행정조직에 대한 인사와 감시, 그리고 인권보호를 관장하는 국가기관들의 독립성 보장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가 발전해 가면서 한국은행, 감사원, 중앙인사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기관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정권 출범 초기 '작은 정부'의 명분 아래 독립된 인사기구로 발전해 가고 있던 중앙인사위원회를 폐지해 공무원 인사권을 행정안전부로 넘겼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화 하려다 여의치 않자 조직규모를 대폭 줄여 버리는 꼼수를 두기도 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독립적인 통화신용정책기관에 대한 잦은 간섭으로 이들 기관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다 효율적인 행정관리를 위해 분산된 권한의 집중이 필요했음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경제 살리기에 정권의 사활을 내건 입장에서 먼 길을 둘러 가기보다 지름길을 택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음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그런 행동은 전형적인 소탐대실의 어리석은 선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신제도주의경제학(NIE)에 대한 눈부신 연구 성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더글라스 노스와 그의 동료 배리 와인게스트가 1989년 공동집필한 '헌법과 신뢰성 담보: 17세기 영국의 공공선택을 좌우한 제도의 진화'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7세기 영국의 절대군주가 신흥 부르주아 세력에게 제공했던 '신뢰성 담보(credible commitment)'의 개념이 그것이다. 절대군주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신민의 재산을 마음대로 전유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하지만 그는 신민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 자체가 결국 신민의 활발한 경제활동을 억제해 조세수입의 감소로 이어짐을 아는 까닭에 사유재산에 대한 권력의 전횡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얻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사유재산권에 기초한 자본주의와 그에 부합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이념을 절대왕정으로부터 배태시킨 동인이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통화신용정책, 감사, 인사, 인권 관련 기관들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보호해 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시장은 투기꾼의 손에 놀아날 것이며, 감사기관의 독립이 훼손된다면 정부는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로 넘쳐나게 될 것이다. 인권보호기관이 독립성을 잃고 행정 권력의 눈치나 보게 된다면 인권을 침해당한 국민은 결국 폭력시위와 같은 비제도적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으려 할 것이고 우리 사회는 또 다른 혼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과연 무엇이 작금의 인권위 사태에 대한 현명한 답일 것인가? 수 세기 전 영국의 절대군주가 내렸던 냉철한 선택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동의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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