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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정사회' vs '정의사회' /차재권

언행일치 안 돼, 5공 시절 떠올라

곧 있을 내각인선 진위 가늠 시금석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14 20:36:53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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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의 화두를 던진 이래 그 의미와 진정성을 놓고 말들이 많다. 반응도 제각각이다. 보수언론은 기득권에 대한 공격의 신호탄이 아닌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관료사회, 재계 등 또 다른 기득권층 일각에서는 집권 후반의 레임덕을 의식한 '사정(司正)'의 칼날이나 '재벌 길들이기'의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도 대통령이 꺼낸 '시대의 화두'가 혹 그들이 독점해온 사회적 의제들을 압도해버릴까 걱정이 앞서는 눈치다. 그래서인지 애써 대통령이 던진 화두를 폄하하거나 그 배경의 진정성에 의문을 달기 바쁘다.

왜 대통령이 던진 한마디가 이토록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화두를 던진 당사자에 대한 세인들의 불신이 가장 크게 작용한 듯하다. 사실 '공정사회'와 같은 지극히 규범적인 정치 모토는 어떤 정치인이든 앞마당 우물에서 물 길어 먹듯 쉽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실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공정사회'의 모토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자신의 통치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수사로 동원한 인물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멀게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B.C. 495~429년)를 들 수 있겠고 가깝게는 5공 시절의 전두환 대통령을 들 수 있겠다.

페리클레스는 전사자를 위한 추모연설에서 소수의 독점을 배격하고 다수의 참여를 보장하는 정치체제가 바로 아테네 민주주의의 요체라고 역설했다. 모든 시민이 평등한 권리를 갖고 출신가문이나 성장배경이 아닌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입신의 명예와 공적을 세울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 화두도 페리클레스의 민주주의론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 페리클레스는 언행 일치를 통해 아테네 시민들에게 지도자에 대한 무한신뢰를 갖게 하고 아테네를 민주주의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에서 '친서민'에 이르기까지 요란한 구호에 걸맞은 행동의 실천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그래서 심지어 그간 어렵게 쌓아올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집권 초기의 '고소영', '강부자' 내각 논란에 이어 부동산투기와 위장전입, 병역비리와 탈세로 점철되었던 인사청문회들을 기억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대통령이 말했던 그 '희망적인' 단어들이 한낱 언어의 유희에 지나지 않음을 이내 깨닫고 실망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는 오히려 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건 '정의사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정의사회 구현'의 기치 아래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과 언론탄압 그리고 삼청교육대와 같은 가공할 인권유린이 자행된 바 있다. 물론 이 대통령이 제안한 '공정사회'의 모토가 '정의사회'와 같은 파렴치한 인권탄압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과거의 불편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이유는 다만 그때 그 정권의 '적자(嫡子)'가 여전히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고 과거와 유사한 간판을 내걸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가 '중도실용'이나 '친서민 정책'을 운운하면서 말만 앞서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과오를 범해 왔다는 데 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위정자의 말은 데마고그(demagogue)의 선동정치에 불과하며,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대통령이 그런 과거의 과오를 재현하리라 생각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껏 나온 대통령의 '공정사회' 발언에서 형식논리상의 하자는 없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환골탈태로 이해하며 반기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다수 국민들은 '공정사회'의 모토에서 페리클레스가 베푼 선정보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폭정을 더 쉽게 떠올린다. 그런 국민들을 유쾌하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해방시킬 책임은 '공정사회'의 화두를 던진 대통령 자신에게 있기에 조만간 있을 총리를 포함한 내각 인선은 '공정사회'의 진위를 가르는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동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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