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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살기 좋은 풍경 /강영조

아름다운 풍경의 전제조건은 인간의 생존에 유용한 환경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8-11 19:58:13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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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년 전, 혹은 오백만 년 전. 인간의 선조가 최초로 숲에서 나온 그때, 그들은 눈앞의 세계를 어떻게 보았을까."

인지과학자 제임스 깁슨은 그의 유명한 저서 '시각세계의 지각'에서 공간의 의미라는 제목의 글을 이렇게 시작한다.

눈앞의 세계를 보는 행위, 즉 풍경의 체험은 시지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체험되는 풍경은 우리의 외부에 있어야 하며 그것과 우리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비로소 체험된다. 칸트는 이를 무관심적 관조라고 하고 이런 태도에 의하여 미적 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풍경의 체험을 이런 정관(靜觀)의 미학만으로 모두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깁슨의 물음은 정관의 미학에 대한 의심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깁슨은 이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힌트는 엉뚱하게도 비교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솔로몬의 반지'에서 얻을 수 있다.

"부활절이 다가오는 3월 초 어느 일요일 아침의 일이었다. 매우 아름다운 너도밤나무 거목에 뒤덮인 숲의 사면을 산책하고 있던 우리들은 드디어 나무가 별로 없는 공지에 다다랐다. (중략) 우리들은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나아갔다. 관목 숲 가장자리를 가르며 널따란 풀밭으로 나오기 전에,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야수라도, 혹은 뛰어난 자연애호자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 같은 그 몸짓, 그래 멧돼지나 표범, 그리고 수렵가나 동물학자가 할 듯한 몸짓을 우리도 따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숲을 빠져나오는 사냥꾼이나 동물들이 우위에 서려고 정찰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그 몸짓, 즉 드러나지 않고 보는 것(see without being seen)이다."

숲에서 나오려고 한 인간의 선조 역시 콘라트 일행과 다름없는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그 인간의 선조는 사냥꾼이나 동물과 똑같이 자기 몸을 숲 그늘에 숨긴 채 주위를 살펴보았을 것이다.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서다. 자기에게 위험한 동물 또는 사람이 있나.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만약 그가 자기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하여 달려든다면 도망칠 수 있는가. 아니면 숨을 곳은 어딘가. 만약 대항해서 싸운다면 어디로 가는 것이 우위에 설 수 있을까.

그의 눈에 비치는 환경은 하나하나가 생존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가 아닌가로 구분된다. 이때 환경은 그의 생존을 위한 도구로 보인다. 숨을 수 있을 것 같은 바위 그늘.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나무둥치, 던질 수 있을 것 같은 돌멩이. 휘두르기에는 무거워 보이는 나무 막대기 등등.

깁슨의 화두에서 '인간의 선조' 대신 '현대의 인간'으로 대치해도 환경의 의미는 마찬가지다. 더운 여름날 계곡물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치자. 우리의 눈에 비치는 풍경은 이런 식이다. 발을 담그면 뼛속 깊이 차가울 것처럼 보이는 계류, 그 계류로 다가설 수 있을 듯이 보이는 계단, 깊은 계곡을 건널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구름다리, 그 속에 들어가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처럼 보이는 나무 그늘 등등.

인간의 눈이 그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을 살피기 위하여 탐색할 때 환경은 그 인간이 기대하는 행동의 가능적 의미로 재편된다. 그때 환경은 할 수 있는(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그 환경이 우리의 안전한 삶을 보장할 듯이 보이면 비로소 안심하고 행동한다. 지리학자 제이 애플톤이 말한 대로 풍경의 미적 체험은 우선 그곳에서의 안전한 생존이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깁슨의 물음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환경이 바람직한가로 치환 가능하다. 물론 그것에 모조리 대답하기는 힘들지만 인간이 기대하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보이는 환경인 점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사용하기 쉽고 행동하기 편한, 그리고 그 속에 들어앉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기발한 건물이나 구조물은 잠시 눈길을 끌지 모르지만 사람이 살기에 좋은 풍경은 아니다. 과다하게 디자인한 광장이나 공공시설물, 사람의 접근을 꺼리는 하천 공간, 그리고 랜드마크로 조성한다고 멀쩡한 교량에 붙여놓은 생뚱맞은 장식물을 볼 때마다 제임스 깁슨을 떠올린다.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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