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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나의 바캉스 사용법 /박형섭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는 여행에서 궁극의 행복을, 내 본질을 찾는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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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7-23 20:08:0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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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 혹은 휴가, 누구든 이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렐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당장 판에 박은 듯 반복적인 삶,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무덥고 뜨거운 태양의 계절, 여름 바캉스는 묘한 낭만적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미지세계로의 일탈, 그것은 자연을 향한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원초적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도 같은 것이다. 낭만적 상상은 예술가들처럼 환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인은 도처에 있다. 시어는 경탄이나 탄식의 순간 저절로 솟아나는 법이다. 자연의 경이, 우주의 신비, 묻혀 있는 진실의 발견 등은 그 자체로 시정을 품고 있다. 나의 바캉스 사용법은 잠시나마 적극적으로 그러한 시적 삶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유인이 되고 싶은 연유다.

프랑스 말인 바캉스는 본래 공석, 지위 따위의 빈자리, 보충해야 할 직함 없는 부서라는 뜻이다. 학생에겐 방학, 직장인에겐 휴가를 의미한다. 텅 빈 학교, 텅 빈 도시가 연상된다. 존재는 비워졌을 때 채워지고, 사물은 해체됐을 때 그 이면이 보인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은 엄청난 양의 정보들, 떠도는 유언비어들로 혼란스럽다. 지식은 곧 편견으로 추락하고, 이데올로기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양산할 뿐이다. 사회적 지위, 책무, 가정의 구성원으로서의 사명을 잠시 벗어나보자. 그렇게 얻어진 자유, 텅 비워진 나, 비로소 나의 진정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를 찾아 나서는 여행, 얼마나 중요한가. 잃어버린 자아, 숨죽인 자아가 마음대로 흘러갈 수 있는 통로를 찾아야 한다. 이곳의 당신들이 아니라 저곳의 그들과 함께 살아보는 것, 레디메이드가 아닌 길 밖의 에움길에서 추방자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편안하게 안주하는 삶이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컴퓨터, 휴대폰, 내비게이션이 없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 나는 기계화된 문명의 노예로, 조직의 부품으로 살아 왔다. 지금껏 모범적인 보통 사람으로 집과 직장의 도로 위를 주어진 신호대로 달렸다. 타자의 삶, 그 때문에 삶이 권태롭고 무의미하게 보였을 것이다. 어떤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모험이 필요하다. 그 경우 정처 없는 방랑과 미로 속의 방황도 값지다. 여행의 첫 순간은 집과 일상에서 멀어지는 것, 모든 맡겨진 일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여행가방, 지도, 기차표 등은 이미 먼 곳에 대한 동경의 표지다. 여행은 사유를 낳는다. 이동하는 비행기나 배, 기차는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가 된다. 눈앞을 스치는 풍경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 묘한 상관성이 있다. 때로 창조적 이념은 처음 대하는 광경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루소, 괴테는 위대한 여행가이자 사상가이다. 그들의 작품은 대부분 여행 중 새롭게 발견하거나 경험한 것에서 착상되었다.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처럼 스스로 앞으로 나아간다.

나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행위는 고된 작업이다. 집을 떠난 나는 더 이상 안락의자 속의 내가 아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새롭다. 내 감각은 한껏 뜨겁게 고무되어 있다. 텅 빈 내 속으로 무수한 사물과 현상들이 기웃거린다. 발견과 경험이 신경계를 자극한다. 공허를 채우고 싶은 본능적 욕망이 일렁인다. 음식, 풍물, 이방의 언어, 희귀한 물건들. 자연적 지리 곁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지리도 있다. 마치 사원의 비밀지도, 숨겨진 하늘의 지형을 보는 듯 환상에 빠진다. 나의 이국적 취향, 내면으로의 질주, 열정의 여행은 그렇게 감동으로 채워진다. 그것은 나의 본질을 찾는 여행이다. 내 속에 있을 법한 아련한 진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거역할 수 없는 생명의 도약이다. 여행 중 보고 듣고 머문 장소, 사람, 대상, 사건은 소중한 추억과 그리움으로 승화된다. 그것들은 나로 하여금 실존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개인적 담론의 원천이 된다. 상아탑 밖의 내 공부는 그렇게 완성된다. 여행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행복이다. 돈, 명예, 건강, 사랑과 같은 보편적 개념이 아닌 색다른 행복은 길을 떠나는 자의 특권이다. 나는 어느새 세상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풍류객이 됐다. 그것은 지금까지 형성된 자아의 틀에 충격으로 작용한다. 나는 휴가철만 되면 비일상적 여행을 통해 일상에 역동성을 주는 에너지가 충전되길 기대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또 다른 길을 찾는 꿈을 꾼다.

부산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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