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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방정부의 지불유예선언을 보는 한 가지 시각 /오창호

정부가 할 일은 재정규모를 키우는 게 아니라 살림을 사는 것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7-21 21:09:1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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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장면이 있었다. 지난 12일 성남시의 새로 뽑힌 민선 시장이 시청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교신도시 조성을 위해 판교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돈 5200억 원에 대해 지불유예를 선언한 것이다. 성남시는 당초 올해 1000억 원, 2011년과 2012년에 각 2000억 원씩 갚을 계획이었으나 신임 시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시립병원 건립·성남1공단 공원화 등 일반사업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지급기간을 유예한다고 선언했다.

성남시의 지불유예 선언에 대해 국토해양부와 행정안전부, LH(한국토지주택공사) 관계자 등은 반박했다. 올해 안에 성남시가 LH 측에 350억 원 정도만 정산하면 되는 상황에서 지불유예를 선언한 것은 납득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달 말까지 납부 만기가 도래한 것이 없고, 판교특별회계에 700억 원의 잔액이 있는 만큼 지불유예를 선언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성남시는 올해 안에 LH 측에 지급해야 할 금액이 1790억 원이며, 이 돈에 대해서 국토부는 이달 말까지 정산을 완료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성남시는 현재 시 재정상태가 좋지 못해 판교 특별회계 전입금을 갚을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부득불 지불유예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올해 안에 갚아야 할 돈이 350억 원인지 아니면 1790억 원인지, 과연 성남시는 판교특별회계전입금 5200억 원을 갚을 능력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제3자인 우리는 모른다. 성남시장의 지불유예 선언이 정부 측이 주장하듯이 "행정의 연속성을 저해하는 행위로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성과 자율성을 벗어나는 일"인지, 아니면 성남시장이 주장하듯이 "시민들은 자기 살림살이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고, 이번 지불유예 선언은 성남시의 살림살이를 시민들에게 정확히 알리기 위한 것"인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서로를 정치적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그것이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마음의 발로인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가 일찍이 경험했고 또 최근 그리스가 겪고 있는 채무불이행 사태를 보듯이 지방정부는 물론 중앙정부의 재정파산 가능성이 항존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7월 1일 아놀드 슈왈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재정비상사태'를 선언한 바 있고, 또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는 1994년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재산세 수입이 줄자 이를 보전하기 위해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크게 손실을 입어 결국 연방법원에 재정파산을 신청한 바 있다. 2006년 일본의 홋카이도에 위치한 유바리시 역시 주력산업이던 석탄산업의 붕괴로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려고 지방채를 발행, 관광산업에 투자했다가 거품 붕괴와 함께 사실상 파산한 바 있다. 그리고 그 파산의 결과가 국민의 삶에 어떤 고통을 안겨주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면서 재정 규모가 자꾸 커지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이 앞다퉈 굵직굵직한 공약을 내걸고 표심을 유혹하는데, 공약사업들에는 하나같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공약을 내걸어야만 유능한 인물처럼 비치기 때문에 자꾸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세금을 올리든가 무책임하게 지방채를 발행해 빚을 키우게 된다. 후보들이 추진하겠다는 사업들이 알고 보면 모두 국민의 돈을 가지고 하는 것이면서도 그들은 마치 자신의 공적인양 생색을 낸다.

사실 정부는 중앙정부이든 지방정부이든 경제의 일차적 주체는 아니다. 정부는 정해진 예산을 가지고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분해서 사용하는 재정 즉 살림살이의 주체이지 장사나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정부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 유지된다면 정부가 재정적으로 파산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는 본성상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보다는 제한된 범위에서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소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또한 자치단체의 장이 갖추어야 할 덕목도 돈을 벌어들이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능력, 즉 CEO의 자질이 아니라 예산이 골고루 필요한 곳에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챙기는 목민(牧民)의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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