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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실패의 조각들 /서진

지금의 나를 만든건 성공한 사람의 경험담이 아니라 실패에서 얻은 교훈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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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7-09 21:25:04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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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가장 크게 실패하는 경우는 소설책이 안 팔리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다.

단편소설이라면 포기하고 다시 쓰면 되지만 장편소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료 조사부터 시작해 집필과 퇴고의 시간까지 합하면 짧아도 1년, 길면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물론 그동안 소설만 쓰는 건 아니지만 에너지의 중심은 쓰고 있는 장편소설에 집중된다. 마감 기한이 늘어날수록 장편소설을 포기하기는 힘들어진다. 그건 마치 손해가 나는 펀드를 본전 생각이 나서 팔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포기하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만 늘어날 뿐이다.

3년 동안 완성하지 못한 장편소설이 있다. 동시대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뱀파이어 소설이다. 쓰지 못할 소설은 없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 때에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첫 한 해는 느긋했고, 두 번째 해에는 작업실을 얻어 초고를 완성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 봐도 나를 감동시키는 구석이 없었다. 원고지 1000매든 2000매든 작가 스스로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소설은 쓸모없는 종잇장에 불과한 것이다. 어떻게든 완성해 보기 위해서 이야기를 바꿔 보고, 구조를 바꿔보고, 캐릭터를 바꿔 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문득 겁에 질렸다. 어쩌면 이 작업은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

내 인생에 어떤 큰 실패가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첫사랑과는 (당연히) 헤어졌고, 전자공학 박사과정을 중간에 포기했으며 지역 문화잡지를 만들다 도중에 그만두었다. 당시에는 실패가 너무 커서 인생이 당장이라도 무너지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내가 가려고 했던 대학은 나를 더욱 숨 막히게 했을 게 분명하고, 첫사랑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아내와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고, 억지로 공부하고 있었던 박사과정을 끝까지 마쳤더라면 미쳐버렸을지 모른다. 잡지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실패를 인정하기까지 남들보다 긴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결국 올해 봄, 나는 3년째 잡고 있던 장편소설이 실패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억울하고, 아쉽고, 슬프고, 바보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한 달간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언제 내가 그런 소설을 쓰고 있었는지 까마득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한결 부담이 덜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뉴욕 서점 순례기를 한 권 냈고, 예전에 써두었던 중편 소설을 수정해서 장편소설 한 편을 막 완성했다. 이런 식으로 빨리 뭔가를 쓸 수 있을지는 나도 몰랐다. 역시, 더 빨리 실패를 인정했어야 하는 것이다.

실패의 조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는 건 아닌가 싶다. 성공의 경험은 너무 달아서 입안에서 녹아버리지만 실패의 맛은 씁쓸해서 오랫동안 입안에 남는다. 실패를 해서 무슨 교훈을 얻었느냐고 물어본다면 입에서 무슨 말이 맴돌기만 할 뿐이지만, 차곡차곡 실패의 조각들은 몸에 쌓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더 단단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언젠가부터 성공의 법칙이나 경험담을 떠벌리는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성공한 사람들도 수많은 실패를 겪었겠지만 그건 단지 성공의 과정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성공담을 듣는 사람들은 똑같은 실패를 겪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단지, 실패 뒤에 만나게 될 큰 성공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성공하고, 저렇게 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책이 잘 팔리는가 보다. 하지만 그런 책을 읽어 봤자 순간의 위안을 얻을 뿐, 그 중의 단 1퍼센트도 책이 알려주는 대로 성공하지 않는 것이다.
성공을 장려하기보다는 실패를 장려하는 책이라도 하나 쓰고 싶다. 무서워하지 말고 실패할 것. 성공에의 집착과 환상을 버릴 것. 그리고 다른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할 것. 단,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해야 됨. 그리고 또 실패할 것. 실패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으다 보면 어느새 성공할 수 있음. 방구석에서 소설이나 쓰고 있는 나도 할 수 있는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훨씬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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