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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전도몽상(顚倒夢想) /정찬주

내 생각만 고집하니 4대강이나 세종시 시비·갈등 넘쳐

지도자들이여! 진실 그대로 보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6-18 20:37:2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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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마친 농부들은 요즘이 한가하다. 산책길에 지나치는 버스를 보면 농사일이 한창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농번기 때의 버스는 텅 빈 채 운행하기 일쑤인데, 요즘에는 장날이 아니라도 네댓 명의 낯익은 농부 얼굴이 보인다.

내 산방 처마 밑에 사는 어미제비도 새끼들이 스스로 날게 되자, 급한 일을 마쳤다는 듯 둥지를 비운 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론가 외출한 것 같은데, 혹시 새끼가 살 둥지를 지어주려고 잠시 떠나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역시 며칠 전에 산방 위아래 밭을 서둘러 손보고는 지금은 여유를 부리고 있다. 산방 위 밭은 억새풀이 우거지고 칡넝쿨까지 뻗어가고 있어 마음이 심란했던 터였다. 아내와 의견 충돌이 일기도 했다. 아내는 콩과 참깨를 심으려는 나를 두고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일꾼을 불러 작물을 심고 가꾸는 경비가 사먹는 것보다 더 든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멀쩡한 밭을 묵정밭으로 묵히는 것은 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자락에 처음으로 밭을 만든 사람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직무유기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내와 의견이 다르다 보니 파종 시기가 늦어졌다. 그런데 김 씨는 콩과 참깨는 늦을수록 수확량이 많아진다고 주장했다. 기와막골에 사는 정 씨는 농사일에 수완이 좋은 김 씨를 부러워하며 기웃거리곤 했다.

"저는 참깨 씨를 산비둘기 때문에 벌써 네 번째 심고 있습니다. 산비둘기가 왜 가난한 집 밭에만 와서 참깨를 파먹는지 모르겠습니다."

"산비둘기가 부잣집, 가난한 집 밭을 알아본다는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 하하하."

답답한 정 씨가 웃자고 지어낸 얘기였을 것이다. 내가 20리 밖에 사는 김 씨를 농사일이 있을 때마다 데려오는 이유는 아이와 같이 웃는 미소가 일품이고 농사의 지혜가 많기 때문이었다. 무일푼 신세로 텃세가 심한 객지마을에 정착하여 부자가 되고 이장까지 지내게 된 경력도 그분의 해맑은 미소와 지혜의 힘이 아닐까 싶다.

산비둘기가 참깨 씨를 파먹지 않는 방법은 간단했다. 못자리용 흙인 상토를 참깨 씨 위에 살짝 덮어주기만 하면 됐다. 산비둘기가 부리로 두둑을 헤집지만 그때마다 몽글몽글한 상토가 참깨 씨를 덮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산비둘기의 급한 성질을 이용한 방편인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경험한 방법이니 믿어도 좋을 듯하다.

다만 콩은 어쩔 수 없이 몇 알씩 더 심어 산비둘기 몫도 양보해야 한다. 콩은 상토를 덮는다 해도 잘 드러나기 때문에 소용없다는 김 씨의 말이다. 김 씨는 산방 아래 밭도 말끔하게 정리해주고 갔다. 산방 아래 밭 대부분은 어린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데, 밭에 널린 돌멩이를 주워 한쪽에 쌓아놓으니 돌탑이 됐다. 이 세상에 이름 없는 풀이 없듯 구르는 돌멩이 하나도 다 쓸모가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나는 이따금 나만의 화두에 잠긴다. 밭에 심어진 느티나무나 동백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어디가 나무의 머리이고 어디가 다리인가' 하고 궁금해지는 것이다. 무심코 보면 가지와 잎을 지탱해주는 뿌리가 다리인 것 같지만, 의미를 따져보면 잎과 가지를 죽이고 살리는 근본이 되는 뿌리가 머리 같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나만의 화두에서 빠져나온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 중심으로 왜 사고하는가?'라는 자각이 들어서이다. 산방 둘레에 사는 박쥐도 마찬가지다. 박쥐는 왜 거꾸로 매달려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지만 그것은 나의 주관일 뿐이다. 박쥐는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인데 내 중심으로 망상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의 사고를 두고 불가에서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고 한다. 인연의 그물 속에 있는 사건과 유무정물을 진실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 중심의 편견과 지식으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세상에 시비와 갈등이 넘쳐나는 것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심각한 전도몽상 때문이 아닐까 싶다. '4대 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로 나라가 분열하고 민심이 애처롭게 멍들고 있는 것도 사실은 이른바 자칭 타칭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전도몽상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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