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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편경(編磬)에 숨어있는 과학 /이상원

모든 국악기음 표준 악기 '편경'… 일기·기후 변화에도음정·음색 변함없어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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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6-07 20:44:4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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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진의 만어사는 두들기면 마치 종을 칠 때 나는 소리를 내는 바위들로 유명하다. 절 앞으로 펼쳐진 완만한 암괴류의 크고 작은 암석들을 망치나 주먹 크기만 한 돌로 두들기면 흡사 종소리 같은 음향을 낸다고 해서 더러 종석(鐘石)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이렇게 소리를 내는 바위들은 해운대 장산 기슭에 나타나는 너덜겅, 즉 암석 테일러스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흙에 묻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길이가 긴 것과 짧은 것, 두께가 두꺼운 것과 얇은 것 등, 그 크기나 형태 그리고 산사면에 놓여 있는 모양에 따라 각각 다른 소리를 낸다. 예를 들면 반쯤 흙에 묻혀 있는 것보다 다른 바위 위에 걸쳐 있는 것이, 두꺼운 것보다 얇은 것일수록 맑고 높은 소리를 낸다. 진동이라는 물리적 현상 때문이다. 꼭 같은 크기의 유리컵이나 병에 각각 양이 다르게 물을 담아 나무 막대나 젓가락으로 두드리면 높이가 다른 소리가 나는 실험을 해봤을 것이다. 즉 물의 양에 따라 컵 속이나 병 속에 빈 공간이 다르게 되고, 컵을 두드리면 컵 내부 공기의 진동수가 달라져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이다.

전통 악기 중 석부(石部)에 속하는 아악기, 즉 돌(경석(磬石), 옥)을 써서 만든 악기가 있는데 바로 편경(編磬)이다. 편경은 송나라 궁중에서 연주된 제례음악인 '대성아악'과 함께 고려 예종 11년(1116년)에 전해졌다고 하니 순수한 우리 악기는 아니다. 하지만 조선 세종조에 들어와서 직접 경기도 남경에서 나는 옥을 가공해서 우리 나름의 음고를 정해 제작하였고, 궁중의 아악을 연주할 때나 종묘제례나 문묘제례 때 음을 조율하는 중요한 악기로 자리 잡았다. 그 재료가 희귀하고 제작이 매우 까다로워 귀하게 여겼겠지만 악기의 재질이 천연 광물질이라 온도나 습도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일기나 기후의 변화에도 음정과 음색이 변하지 않아 모든 국악기 음 조율의 기준이 되는 표준악기였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조선시대의 악사들은 전쟁이 나면 편경을 우물에 숨겨 놓고 피란을 갔다는데, 아마도 다른 악기가 파괴되어 없어져도 편경만 있으면 이 악기의 음을 표준으로 해서 여러 악기를 복원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국대전'에는 '편경을 망가뜨리는 자는 곤장 100대와 유배 3년에 처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데, 편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경석을 구하기 어려웠겠지만 이 악기가 그만큼 소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편경은 경석을 'ㄱ'자 모양으로 깎아서 상단의 나무틀에 8개, 하단에 8개의 경석을 매달은 형태이며 쇠뿔로 만든 '각퇴'라는 작은 망치로 경석의 끝부분을 쳐서 소리를 낸다. 편경의 원료인 경석은 '옥돌'이라고 불리우며 석회암과 대리석이 섞여 있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아마도 석회질 암석이 변성작용을 받아 투각섬석이란 광물의 집합체로 변한 것일 게다. 우리나라에는 청색의 경옥(제다이트)은 나지 않으므로 아주 미세한 침상의 투각섬석 광물이 서로 치밀하게 얽혀 있어 재질이 단단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백옥을 가공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경의 크기는 모두 같고 두께로 음의 높낮이를 조정하였는데 편경은 두꺼울수록 높은 음을 낸다. 이같이 다른 소리를 내는 이유가 바로 진동 현상 때문이다.

'기역자(ㄱ)' 모양으로 구부러진 편경의 모습에 절묘한 과학 원리가 숨어 있는데, 모양이 다른 편경을 제작해 실험 분석해 보니 꺾인 각도에 따라 기본진동수와 그에 따른 조화진동수가 달라졌다고 한다. 기본 진동수에 대한 조화 진동수가 완전한 배음구조를 이룰 때 그 음색이 한결 안정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구부러진 편경 모양은 천지에 대한 철학적 의미 이상으로 최적의 음을 내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절단기나 연마기 없이 장인의 손으로 일일이 다듬고 정성을 다해 갈아가며 음을 만들어 냈을 것을 생각하면 덩치 큰 불편한 악기로 보이던 편경이 오히려 청아한 음을 만들어 내는 멋진 악기로 여겨지지 않는가. 이제 편경이 아악 연주에나 제한적으로 연주되는 과거와 전통 속에 남아 있는 악기가 아니라 현대에 활용되어 우리 생활 속에 청아한 옥음을 한껏 들려줬으면 좋겠다. 부산대 교수

※사외 필자의 견해는 본지의 제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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