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절망하느니 파랑새를 찾자 /장혜영

시절이 수상해도 삶이 고통스러워도 그 안에서 열심히 살아볼 도리밖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5-12 19:38:47
  •  |   본지 2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요즘 세상을 보면 '시절이 하 수상하다' 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비보가 전해온 데 이어 여기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아이티와 칠레의 강진으로 인한 참사가 빚어졌다. 얼마 전엔 멕시코 북부 태평양 쪽 반도인 바하칼리포니아에 강진이 일어나 그 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TV로 축구를 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걸려오는 한국 지인들의 걱정스러운 전화에 오히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멕시코시티가 지진대인 데다 나 역시 몇 년 전 한밤중에 괴기영화를 보고 있는데 리히터규모 6.3의 지진이 나 그 영화보다 더 괴기스럽게 집이 기우뚱했던 경험이 있다. 이참에 1985년의 멕시코시티 대지진을 겪은 친구들한테 지진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무조건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는 게 좋은지 물어보았다. 바로 뛰어나갈 수 있는 거리라면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지만 그게 아니면 바닥에 엎드리거나 보호가 될 수 있는 단단한 가구 아래에 들어가 머리를 감싸고 있는 게 낫다는 것이다. 한 친구는 85년 지진 때 9층 건물에 있었는데 겁에 질려 급하게 뛰어나간 한 여성은 비상 계단에서 건물 창밖으로 튕겨나가 심각한 골절을 입었고 건물 안에 있었던 자기는 멀쩡했다고 한다. 결국엔 침착하게 최대한 보호가 될 곳에 몸을 숨기고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얘긴데 정말 지구가 노하기라도 한 것일까. 사실 천재지변은 불안에 떨어봤자 도움도 안 된다.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어디 피할 수가 있나, 나갈 수가 있나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냥 그동안 나름 열심히 살았고 좋은 데 여행도 많이 다녔으니 아쉬울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다며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나이와 체력 핑계를 대며 매우 게으르게 살았더니 이제 그런 상황에 당면하면 후회되는 게 너무 많아 이대로 죽긴 아쉽다며 마구 발버둥 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든다.

죽음에 대처한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산다는 것(1952)'이다. 평생 서류에 결재 도장만 찍고 민원을 청하러 오는 주민들에게도 "내 담당이 아닙니다, 다른 부서로 가세요" 소리만 했던 한 공무원이 불치병 선고를 받게 되자 무의미하게 지낸 삶이 후회돼 방황하던 차, 이제 남은 시간만이라도 다르게 살아야 그나마 후회가 줄어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관청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가난한 동네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고, 그야말로 이미 목숨을 내놓은 상황이라 더 무서울 것이 없었기에 관료주의에 물든 상사와 동료들을 설득해 가난한 지역의 식수 오염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조금 덜 후회되는 마음으로, 동네 사람들의 진심 어린 눈물을 뒤로한 채 눈을 감는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경우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1886~1944)의 실제 삶이다. 역사학계의 학풍을 뒤집었다는 아날학파의 창시자인 그는 유태계였기에 2차 대전 직전 가족과 함께 목숨을 건 피난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아빠, 역사란 도대체 뭘 위한 거예요?" 라는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의 유작 '역사를 위한 변명 혹은 역사가의 임무'를 쓰다가 미완성 상태에서 펜을 놓고 나치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단체에 합류한다. 그는 결국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총살당하는데 두려움에 떠는 어린 소년 레지스탕스를 위로하며 의연히 죽음을 맞았다 한다. 그가 굳이 이러한 길을 갔던 것은 어차피 유대인으로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당시의 현실 속에서 불확실한 삶에 연연하기 보다는 역사가의 펜은 진실을 말해야 하고 역사가의 임무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던 그의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 후회 없는 마지막이 될 것이라 믿어서였을 것이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 감히 블로크 같은 위인의 삶을 그대로 따를 수야 있겠냐마는 결국엔 시절이 수상하든 살기가 힘들든 세상이 잔인하게 돌아가든 그 상황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 외엔 답이 없는 게 아닐까. 시대가 어려울수록 오히려 희망을 찾는 것은 쉬울 수도 있는 법, 이 수상한 시절에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다음 세대에 희망을 줄 수 있을지 그 길을 찾고 싶다.

멕시코 이베로아메리카대학 박사과정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4. 4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5. 5“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8. 8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9. 9[속보] 대통령비서실, 30억 들여 월평균 11회 여론조사…내용은 비공개
  10. 10[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1. 1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2. 2[속보] 대통령비서실, 30억 들여 월평균 11회 여론조사…내용은 비공개
  3. 3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4. 4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5. 5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6. 6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7. 7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8. 8"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9. 9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10. 10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4. 4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5. 5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6. 6강연 통역하고 요금 모니터링…관광·마이스산업 AI 바람
  7. 7“임기내 부산 1호 유니콘기업, 기업공개 2건 목표”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27일
  9. 9SK하이닉스, 2026년 3분기 경영실적 발표…매출 104조, 영업이익83조
  10. 1011월 BSI 연속 부정 전망…반도체 전자·통신장비 9개월만에 부정적
  1. 1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4. 4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5. 5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6. 6[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7. 7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8. 8법원 “부하직원 횡령, 감독 안 한 상급자 견책 정당”
  9. 9“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10. 10장애인 학대해 잘려도…실업급여 챙겼다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3. 3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4. 4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5. 5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10. 10[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어떤 ‘최장수’ 기록
프랑스를 망친 결정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회 동행명령 외면한 지광스님, 법적 책임 물어야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AI 시대, 평가의 진정성을 묻다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