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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여미는 삶, 여미는 문화 /김수우

타인 배려하는 여유 있어야 봄도 봄답고 우리도 우리다워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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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4-02 20:44:08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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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는데 저만치 무언가 움찔거린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는다. 웬 너구리인가. 자세히 보니 바람에 쓸려 다니는 빈 비닐봉지이다. 괜히 가슴을 쓸어내린다. 부쩍 그런 착시가 잦다. 덜컹, 가슴이 자주 내려앉는다. 비둘기나 고양이라고 생각했던 게 다가가면 구겨진 신문지나 종이 뭉치이다. 나이 탓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주로 서두를 때 그런 현상이 많아진다. 빠르게 지나치거나 마음이 쫓길 때 사물의 면목을 착각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빈 비닐봉지나 마구 구겨진 종이가 동물처럼 보이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진짜 동물이 구겨진 종이처럼 보이면 어떡하겠는가. 살아있는 것들이 죽은 것들로 보이면 큰 재앙이 아닌가. 이 시대는 어떤가. 생명적인 것들이 함부로 외면당하고 있지 않은가. 파헤쳐진 4대 강을 비롯해 끊임없이 소외되고 잊혀진 모든 삶이 그렇다. 혼재된 가치가 잉태한 불안한 욕망은 온통 기형이고 불신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착각한다. 아름다운 착각이 있고 위험한 착각이 있다. 경쟁은 이겨야 한다는 착각, 빨리 가면 더 많이 가질 거라는 착각 등 본래가 아닌 것을 본래라고 믿는 물질적 착각은 위험하다. 그중에서도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거라는 착각, 강을 개발하면 잘 살게 될 거라는 착각은 정말 아찔하다. 그런 착각들이 전통적인 오만한 위계를 다시 만들고 극단적인 소비사회를 몰아가는 현실이다.

문화는 시대 전체를, 동시에 개체의 행복을 진단하는 더듬이로 작용한다. 때문에 존재 증명하듯 무턱대고 여기저기 제 잣대를 들이대며 문화적이고자 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급하다. 빠른 시간에 무언가 성취해내지 않으면 조바심이 난다. 모퉁이마다 개발논리에 밀리고 가는 데마다 문화정책이 난무한다. 하지만 수치로 환산되는 어떤 유용성과 저울질 속에 창조적이고 인간적인 문화를 심는 게 가능할까. 과연 시민은 행복한가.

떼 지어 움직이는 것은 아름다운 선을 만든다. 물고기떼나 새떼들, 개미집단이 만들고 있는 흐름을 보면 그 오묘함이 신비하게 다가온다. 우리 사회의 흐름이 그렇게 자연적일 수 있을까. 역사와 문화의 향방에 대해 아름다운 선을 그을 수 있을 것인가. 다중지성의 시대라고 한다. 대중과는 달리 나름대로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서로 긴밀하게 공유, 연대하는 이 지적 욕망은 사회 이슈에 합리적으로 반응한다. 온몸으로 켜던 아름다운 촛불처럼 수평적으로 분산된 이 지성은 자유롭게 전체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낸다. 이 다중지성의 뿌리가 '배려'여야 하지 않을까. '함께'하는 데는 배려가 우선이다. 관심을 가지고 염려함은 이타(利他) 그 자체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 속에 뿌리하고 있는 '모심의 사상'인 것이다.
'여미다'라는 동사를 참 좋아한다. 이 말 속에는 단정함과 겸허함, 정성스러움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어떤 의지까지 담겨져 있다. 이런 단어는 차분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 철이 들면서 옷깃 여미는 법을 배운다. 옷깃 여미는 자세에서 우리는 문득 자신을 환기하고 자신의 시간과 자리, 그리고 상대방을 환기한다. 거기에서 '모심(侍)'이 싹트며, 이것이 곧 회복지심이 아닐까. 함부로 서둘러선 옷깃도 마음도 여밀 수 없다. 배려란 그런 여미는 마음이 바탕이며, 그런 여밈이 또한 문화의 바탕이다. 배려를 잃어버린 사회에 문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배려하는 힘이 문화적인 힘이다. 여미는 삶,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여미는 그래서 상대를 배려하는 힘이 진정 요원한 사회적 지성인 것이다. 옷깃만 여밀 게 아니라, 가슴도 여미고 관계도 여미고 추억도 여며야 한다. 다치고 무너진 무릎들, 버려지고 잊혀진 눈빛들, 가난하고 추운 영혼도 모두 여며야 한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볼 때, 함께 할 수 있다. 버려진 비닐봉지도 살아있는 생물처럼 보이는 착시쯤 괜찮지 않을까. 그것이 배려하고 조심하는 마음에 이르기에. 아무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대가 사랑하는 자가 되라는 인도의 잠언으로 오늘 하루를 여미어보는 것은 어떨까. 타자를 충분히 배려하는 여유 안에서 봄도 봄답고 꽃도 꽃답고 우리도 우리답다. 옷깃을 여미듯 맑게 피어나는 저 목련들, 사월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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