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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지혜로운 자만이 자유롭다 /김재기

진정한 자유 누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자격 갖출 훈련이 필요하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3-31 20:33:18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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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저서 한 권에 한때 수십억 원의 경매가가 매겨졌다는 황당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물론 철없는 중생들의 치기에서 나온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절판이 예고된 스님 책들의 중고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얘기를 들어보면 마냥 장난으로 치부할 일만은 아닌 듯싶다. 사후에 모든 저서를 절판하라고 당부했던 고인이 이를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난 이 소식을 접하며 엉뚱하게도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유란 구속이나 강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가리키지만, 철학적으로는 "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세속의 탐욕에 휘둘리지 않고 거꾸로 욕망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었던 법정 스님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분의 마지막 결정은 당신이 원하던 바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한 개인의 자유로운 결단이 사회라는 거대한 투기장의 규칙을 깨뜨릴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시대의 스승이었던 큰 스님의 경우에도 사정이 이러할진대, 우리 같은 평범한 속인들에게 자유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자유롭게 결정을 내리지만, 우리가 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때 우리의 자유에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얼마만큼 우리 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일까, 다시 말해 우리는 얼마만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일까?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새내기들의 활력으로 교정엔 싱그러운 기운이 넘친다. 하지만 이제 막 대학생활을 시작한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두려움 또한 그득하다. "그냥 선생님께서 다 정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나 혼자 뭔가를 결정하려니까 너무 불안해요"라고 말하는 새내기들에게 "이제 너희들은 성인이니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해라"라고 충고하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면 그들에게 자유라는 혹독한 시련을 주느니, 차라리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처방과 지시를 내리듯이 때론 친절하고 때론 엄격하게 그들을 이끌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오랫동안 갖가지 억압과 강제에 시달려왔던 우리들은 늘 자유의 가치와 효용에 대해서만 거창한 담론을 늘어놓았을 뿐, 실제로 그 자유라는 연장을 제대로 쓰려면 어떤 훈련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자유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며, 몸에 지니는 순간 자동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요술주머니도 아니다. 실제로 자유는 아주 다루기 어렵고 때론 위험하기까지 한 연장이다. 스스로를 자유인이라 불렀던 그리스의 문호 카잔차키스의 말처럼 "자유란 어린애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 아닌" 것이다.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유를 누릴 만한 자격을 갖춰야 하며, 그에 필요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런 자격을 갖춘 소수 엘리트들에게만 자유를 주고, 나머지 대중은 엘리트의 지배를 따라야 한다는 식의 전근대적 논리를 부활시키려는 건 아니다. 난 다만 자유의 원론적 가치 못지않게 자유를 누리기 위한 조건의 중요성도 강조되어야 함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 진리를 무시할 때 자유는 곧 어리석은 모험이 되고, 그 결과는 늘 우리를 참혹하게 배반할 것이다.

프랑스 계몽주의자 디드로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두고 신부와 논쟁을 벌였다. 절대적 자유의지를 옹호하던 신부가 "난 마음만 먹으면 종탑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다"고 주장하자, 디드로는 "그건 당신이 자유롭다는 증거가 아니라 미쳤다는 증거일 뿐"이라고 대꾸했다 한다. 자유조차도 이성의 한계 안에 두어야 한다는 게 그의 뜻이었겠지만, 우리가 미치지 않고 자유의 효과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단지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분명 부족하다.
사실 인간은 결정하기보다 결정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잘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서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작은 틈새와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 이제 우리에게도 그런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문구보다 "자유란 필연의 인식"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건 내가 나이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경성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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