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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사회발전과 스포츠/염창현

'헝그리 종목'들이 빛을 잃은 지 오래다

먹고살기 위해 운동하던 때는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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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되면 골프가 대중화되고, 3만 달러를 넘어서면 사람들이 승마에 열중하고, 4만 달러에 이르면 누구나 요트를 타게 된다."

세상사가 수학 공식처럼 정확할 수야 없지만 아주 근거가 약한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나라 경우를 대입해봐도 얼추 비슷하게 들어 맞는다. 현재 한국의 국민소득은 대략 2만 달러 수준. 골프가 대중 스포츠의 영역에 들어온 지는 오래됐고, 승마를 즐기는 동호인들의 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선뜻 믿기는 어려우나 2020년께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가 열린다는 정부의 전망도 있고 하니, 조만간 점심 먹은 뒤 소화시킬 겸해서 요트를 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시선을 예전으로 돌려보면 국민소득과 스포츠의 상관관계는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가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는 종목은 격투기였다. 대한민국의 올림픽 첫 금메달이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레슬링에서 나왔고, 이후에도 복싱과 유도 등이 전통적인 메달밭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연히 경기장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겨야 한다는 이른바 '헝그리 정신'이 강조됐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프로복싱이 대다수의 국민들을 텔레비전 수상기 앞으로 끌어 모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팬티 하나만 걸친 채 주먹 두개로 피가 터지게 싸우던 선수들의 몸놀림 하나하나는 팍팍한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 시원한 청량제였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시합을 포기할 수 없다던 김득구의 사망은 '투혼의 화신'으로 칭송을 받았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는 젊은이들이 복싱으로, 레슬링으로, 유도로 뛰어들었다. 딱 하나 믿을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의 몸뚱어리였던 까닭이다.

30여 년 사이 사회의 변화만큼이나 스포츠계도 많이 변했다. 국제대회에서 도드라진 성적을 내는 종목도 다양해졌다. 이전에는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피겨나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오고, 골프에서도 메이저대회를 정복하는 쾌거가 나왔다. 스포츠 전문 방송 채널이 골프대회를 하루 종일 틀어도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는 시대가 됐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격투기 종목은 설 자리를 잃었다. 올림픽에서 복싱과 레슬링의 금맥이 끊긴 지는 오래됐고, 그나마 유도 정도만이 '효자 종목'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것이 풍부해진 요즘, 젊은이들은 체중감량 등을 위해 배곯아가며 구태여 힘든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극한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새로운 흐름은 경제발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일부에서는 운동선수들이 꼭 가져야 할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단견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은 얼마 전 끝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증명됐다. 김연아나 모태범, 이상화 등 겁없는 신세대들은 당당하게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이들의 입에서는 과거 선배들이 했던 '라면 먹고 운동했어요'식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적절한 동기부여만 된다면 꼭 '헝그리 정신'이 아니어도 목표한 바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격투기 종목으로서는 암울한 전망이 되겠지만 그들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국민의 스포츠관도 달라졌고 선수들이 입문할 수 있는 선택의 폭도 커졌다. 앞으로는 외국처럼 의사나 변호사,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국가대표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취미로 운동하다가 기량이 월등하면 선수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선수촌을 만들어 1년 내도록 운동을 시키는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흔치않다.

남은 과제는 사회·경제발전에 걸맞는 스포츠관의 확립이다.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이 국력의 척도라는 명제는 이미 낡은 것이다. 서로를 이기위 위해 스포츠 분야에서 사력을 다했던 미국과 구소련 처럼 냉전시대의 유물을 되살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사외 필자의 견해는 본지의 제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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