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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대학 새내기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장희창

대학 새내기들은 백범일지 필독하길

권력앞에서 떳떳한 김구선생 배우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2-24 19:51:3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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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에 참석했다가 학생 대표로부터 책 한 권을 소개해 달라는 말을 듣고 나는 대답했다. "대학생이라면 김구의 '백범일지'는 꼭 읽어야 합니다." 해마다 같은 소리를 하지만 거기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읽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요동친다. 굴곡에 찬 우리의 근현대사 한가운데를 죽을 힘을 다해 건너가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전달된다. 역사와 문학이 한 몸이 되어 있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석으로 있던 김구(1876~1949)가 어린 두 아들에게 유서 대신으로 쓴 '백범일지'의 이야기들은 그 하나하나가 그림처럼 선명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털어놓으니 별것 아닌 일상적인 일도 시대를 뒤흔든 대사건도 영화 장면처럼 다가온다. 아버지의 숟가락을 엿으로 바꾸어 먹었다가 매를 맞는 장면, 서대문 감옥에 갇힌 아들을 면회 온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나는 네가 평양감사가 된 것보다 더 기쁘다"고 말하는 장면, 여덟 번 고문당하고 일곱 번 혼절하는 이야기, 임시정부 시절 국무령의 신분으로 문전걸식하던 이야기, 감옥을 학교로 만들어 무지한 죄수들을 깨우쳐주던 장면.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으려 일본인 중위를 살해했던 김구가 체포되어 나룻배에 실려 가자 그를 따라가던 어머니는 아들이 당할 고초를 생각하고 뛰어내려 같이 죽자고 권한다. "나는 네 아버지하고 약속했다. 네가 죽는 날이면 우리 둘도 함께 죽자고." 천지는 캄캄하고 물결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축원을 올린다. 흔들리는 나룻배 위에 마주 선 어머니와 아들. 풍전등화 조선의 운명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또 다른 장면. 탈옥 후 시골을 돌아다닐 때의 심경을 김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세상에 나와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활보하니 몸과 마음이 상쾌했다. 감옥에서 배운 시조와 타령을 흥얼거리면서 걸어갔다." 못 말리는 낙천주의자! 지옥도 천국도 걷어차 버리는 광활한 정신. 심각하다가도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동지들의 도움으로 탈옥한 김구는 주로 교육 운동에 전념하다가 3·1 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같은 민족끼리의 분열이었다. 후일의 역사에 대한 예고편이라도 되는 듯이 임시정부는 이편저편으로 나뉘어 싸움질을 계속했다. 예컨대 국무총리 이동휘는 공산주의를 부르짖었고, 대통령 이승만은 허울 좋은 데모크라시를 주장했다. 김구는 이러한 분열을 두고 기괴한 현상이며, 민족의 원기를 소진하는 편협한 당파 싸움이라고 통탄한다.

해방 후에도 분열은 그치지 않았다. 1949년 김구의 신년 연설. "우리나라는 옛적부터 오늘까지 '대가리 싸움', 곧 헤게모니 싸움으로 말썽이 많았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도 머리싸움이 벌어져서 서로 머리가 되려고 머리가 부서져라 싸움만 하고 누구 하나 발이 되려 하지 않았다."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시 문지기를 자청했던 김구는 권력을 추구하기보다는 권력에 저항했던 민주주의자였다. 해방 정국에서 그가 권력투쟁에 능란한 이승만 세력에 의해 제거된 것은 민족사의 비극이었다. 몇 해 전 김구가 십만 원 권 지폐의 모델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좀 나아질까 기대했더니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그 발행이 저지되고 말았다. 건국 60주년을 강조하면서, 광복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오로지 권력을 잡은 자만, 일등한 자만 섬기겠다는 천박한 물신주의의 심보다.

해마다 대학의 새내기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파릇파릇 호기심 어린 눈길 앞에서 희망을 말하기도 절망을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새내기들에게 '백범일지'라는 시퍼렇게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탐방할 것을 권한다. 우선 읽어야 한다. 그러면 그 정신이 스며든다. 우선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대학의 클 대(大)자가 무슨 의미겠는가. 자아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난 드넓은 세계, 자유와 평등과 온정이 넘치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겠는가. 저기, 졸고 있는 학생, 대학의 '대'자가 무슨 의미라고 그랬나?

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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