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잉여의 시대, 봄빛을 기다리다 /김수우

끊임없는 생산으로 소비가 덕목돼 떨림있는 감동 잊어가는 우리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2-19 20:03:07
  •  |  본지 23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꽃꽂이엔 잘 정련된 질서가 담겨 있다. 근대 미학의 정서에 기반한 정성스러운 꽃꽂이는 늘 감탄을 자아낸다. 그래 그건 감탄이다. 감동과는 다르다. 감탄이 화려함과 경이를 품고 있다면 감동은 소박한 울림과 저림을 갖고 있다. 불필요하다 싶은 잔가지를 쳐버린 문명을 우리는 예술로 소비하지만, 그건 확실히 납작한 풀꽃이 주는 떨림과는 다르다. 바로 생명력의 차이가 아닐까.

근대는 인간과 인간의 삶을 계속 질서화한다. 규범화되지 않는 것들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그러나 존재란 결코 질서화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자연이 그렇듯 직선으로 규격화되지 않는 것이 삶이다. 시공을 넘어 무수한 비의를 품은 생명은 규정되지 않아도 충분히 조화롭고 아름답다. 도심의 골목도 그렇다. 꾸불꾸불 꺾이는 구비마다 일상이 푸릇푸릇 여울진다. 소소하고 남루한 것들 속에 함부로 지워버릴 수 없는 존엄이 있다. 인간적인 그 무엇이 당당한 더께를 이루고 있음이리라.

잉여의 시대이다. 모든 것이 남는다. 넘치다 못해 그냥 버려져 모퉁이마다 쌓인다. 여유도 아니다. 기술문명이 만들어낸 소유와 싫증의 부산물이다. 끊임없는 생산 때문에 덕목이 되어버린 소비가 물신의 신화를 빚는다. 과유불급이라고, 옛 선인들은 넘치느니 모자람이 낫다는 지혜를 이미 일러주지 않았던가. 마치 쓰레기가 되기 위해 태어난 듯 새 것들은 이내 싫증난다. 끝없이 새로운 질서화를 꿈꾸며 싫증난 것들은 풍경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손창섭의 단편 '잉여인간'은 불구적 현실에 놓인 소외된 군상의 내면을 담고 있다. 그땐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타난 경제적·정신적인 결핍이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경제적 풍요가 가져온 소외와 잉여이다. 멀쩡한데도 도무지 쓰일 데도 놓아둘 데도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쓰레기더미의 영원한 존속. 함부로 생산하면서 추구해온 경제발전이라는 백일몽의 잔해들이 공포스럽다. 물건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남는다. 잉여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꿈도 쓰레기가 된다. 실업 문제, 노숙 문제, 용산 참사 등이 그 현실의 반영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모든 견고한 것이 녹아 사라지는 '유동적 현대'에서 인간이 생산한 모든 것이 곧바로 쓰레기가 될 뿐 아니라 인간도 쓰레기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저서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묻는다. 처음에는 매력적이던 것들이 쓰레기가 되는 까닭을. 물건들이 추하기 때문에 버려지는가. 버려지기 때문에 추한 것인가. 물건들은 영혼이 없는가.

기술문명으로 손이 퇴화된 현대인은 양심도 퇴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명이 주는 감탄은 늘어가지만 감동은 점점 퇴화해간다. 감동이란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에서 이는 파문이다. 떨림과 울림이 있는 사유의 근본적인 전환은 정말 어려운 걸까. 어떤 철학적 종교적 욕구보다도 존재에 감동하는 일이 우선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소비대열에 끼어 있는 나 자신 또한 이런 반성이 어떤 전환을 발휘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아직도 우리는 질서화와 개발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굽이진 골목을 뜯어내어 도로화하고, 높은 건물을 더 높이 올리려는 욕망의 강박증을 앓는다. 하나 아무리 새롭고 편리한 문명에 감탄하다가도 인근 야산에라도 가면 마음이 그저 맑아지지 않는가. 변두리 좁은 모퉁이라도 소박한 신선함이 있다. 우리는 나뭇가지에 걸린 거미줄에도 감동하고, 꽃술 적신 이슬에도 감동한다. 거기선 아무 것도 버려지지 않는다. 구불텅 구불텅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어도 모든 것이 다 제자리이며, 그 자체로 존재이유를 확보하고 있다.
겨우내 비척비척 말라가는 화분에 매일 물을 준다. 도무지 쓰일 데가 없을 것 같은 물건들도 다시 잘 챙겨둔다. 그리고 봄빛을 기다린다. 모든 것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돌아올 것이기에. 이 잉여의 시대, 어디에 감동할 것인가. 잘 다듬어진 꽃꽂이에 감탄하기보다 시멘트 틈바구니의 풀빛에 떨리는 마음이 곧 구원이 아닐까. 결코 질서화되지 않는 것들이 흔들, 우리 본성을 일깨우듯 기웃거린다. 질경이 같은 저 눈짓들.

시인·백년어서원 대표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많이 본 뉴스RSS

  1. 1[신간 돋보기] 중견 시인과 청년의 따뜻한 대화
  2. 2내달 개각설…해수장관 후임 하마평
  3. 35G 기반 스마트폰·콘텐츠 모바일 올림픽 총출동…이동통신 미래 본다
  4. 4한국해양대 2.5배 커진 한나라호 위용…대학 실습선 4척 명명식
  5. 5“입사 포기하고 뛰어든 국제 구호활동, 제 삶이 됐죠”
  6. 6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7> 재일제주인의 고향 사랑과 감귤
  7. 7부산공동어시장 임금 체불 피소 위기
  8. 8‘문재인 복심’ 친문 3철(이호철·양정철·전해철), 전면에 나서나
  9. 9부산을 보행친화 도시로 <9> 동래읍성 뿌리길
  10. 10부산과기대 박영희 교수 ‘100대 한식대가’에
  1. 1임시공휴일, 대통령 재가하면 확정…출근 할 경우 수당 체계는?
  2. 2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4월 11일 임시공휴일 되나?
  3. 3‘문 대통령 깜짝 축사’ 유한대학교, 故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곳
  4. 4전병헌 전 의원 1심 징역 6년 법정 구속 면한 이유는?
  5. 5부산 중구, 대청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커뮤니티 케어 교육 실시
  6. 62019년 중앙동 장학회 장학금 수여식 개최
  7. 7부산 중구 (사)중구청년연합회 제28차 회원대회 및 회장단 취임식 개최
  8. 8부산 중구 광복동 주민자치회 2019년도 초등학교 입학생 축하선물 전달
  9. 9부산 중구 제10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평가설명회 개최
  10. 10‘문재인 복심’ 친문 3철(이호철·양정철·전해철), 전면에 나서나
  1. 1내달 개각설…해수장관 후임 하마평
  2. 25G 기반 스마트폰·콘텐츠 모바일 올림픽 총출동…이동통신 미래 본다
  3. 3한국해양대 2.5배 커진 한나라호 위용…대학 실습선 4척 명명식
  4. 4부산공동어시장 임금 체불 피소 위기
  5. 5사천 항공정비 첫 손님은 ‘제주항공 여객기’
  6. 6부산 주요 기업 창업주들 ‘현역’ 고수하는 속내는
  7. 723년 명맥 유지 ‘2G’ 없어진다
  8. 8동해 바다도 아열대화 진행, 해조류 무게 줄고 종류 늘어
  9. 9아파트값 하락세 연제·남구, 고분양가 관리지역서 해제
  10. 10달걀 산란일 표기 23일부터 의무화
  1. 1경부고속도로 상황 "경찰 차량 통제, 왜?"
  2. 2 차량 통제, 국빈방문 탓… “국빈이 왜 경부선에?”
  3. 3영광여고생 성폭행 사망사건… “90분 만에 소주 3병 마시게… ‘죽었으면 버려라’”
  4. 4현대제철서 용역노동자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 양승조 충남지사 사태파악 지시
  5. 5조현아 남편 상습 폭행 "죽어, 죽어" VS "의혹 전면 부인"
  6. 6김지은 “예상했지만 암담”… 민주원 ’안희정-김지은 텔레그램’ 공개 하자
  7. 75등급 경유차 규제, 내 차 등급 확인법은?
  8. 8부산 연산동 맨션 인근 지름 2.5m 싱크홀 발생… 차량 1대 빠져
  9. 9공공기관 차량 2부제 실시...제외 차량 및 과태료는?
  10. 10 태권도·유도 도합 6단 시민이 편의점 흉기 강도 잡아
  1. 1‘창과 방패 대결’ 유벤투스 VS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예상 라인업은(챔피언스리그)
  2. 2권아솔 도발에 샤밀, "권아솔은 늘 저렇게 말로만"
  3. 3탁구 중국 귀화 선수, 세계선수권 출전 놓고 '엇갈린 희비'
  4. 43쿠션 프로당구 6월 출범 "제2의 이상천, 김경률 배출하겠다"
  5. 5'도전·비상·자부심'…프로야구 각 구단 야심찬 슬로건
  6. 6절정의 손흥민, 데뷔 첫 '5경기 연속골' 도전
  7. 7컬링 '팀킴'의 호소 사실로…김경두 일가, 횡령 정황까지
  8. 8전국체전 무대가 좁은 차준환, 4회전 점프 없이 쇼트 1위
  9. 9경쟁률 4.5 대 1…거인 4·5선발 자리 누가 꿰찰까
  10. 10최고 구속 145㎞, 김원중 첫 실전등판서 구위 점검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오거돈 부산시장
부산정치인의 말말말
부산정치인의 말말말-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강동수의 세설사설 [전체보기]
새해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1919년 그리고 100년, ‘잡화엄식(雜華嚴飾)’을 꿈꾼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농업이 도시로 들어오고 있다
북항은 진정한 부산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기고 [전체보기]
동남권 신공항, 국회의원 역할 절실 /이영
보행도시, 생태적 지혜와 철학 위에서 구현을 /류경희
기자수첩 [전체보기]
‘교양’을 갖춘 사회를 바란다 /신심범
깨지지 않은 ‘서부산 징크스’ /임동우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반려동물’ 수난 시대
‘스마트’하게 살지 않을 권리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기꺼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삶의 존엄, 죽음의 존엄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국악 선입견과 마주하기
제례악에 내포된 음양오행 사상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엄마 아빠 역할 뒤집기 /하송이
中企를 위한 금융은 없다? /정유선
도청도설 [전체보기]
농기구판 한류
수제화 장인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자기 표현의 기술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읽으며
박무성 칼럼 [전체보기]
국민의 눈높이
‘밥 한 공기 300원’의 미래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포르투갈 리스본의 에그타르트
진화하는 통영 꿀빵
사설 [전체보기]
새 사령탑 맞는 부산비엔날레 새로운 도약 기대한다
30년 만에 육체노동 가동연한 상향한 대법 판결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노동자 건강과 생명보다 중한 건 없다
생계급여 수급 노인과 ‘줬다 뺏는 기초연금’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기절을 부르는 비너스
미술관을 지키는 강아지
이홍 칼럼 [전체보기]
개념도 정리 안 된 ‘4차 산업혁명’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되살아나는 박근혜의 그림자
보행친화도시로 가는 길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발랄라이카와 닥터 지바고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내추럴와인과 정월 대보름
프랑스와 미국의 와인전쟁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 복간30주년기념음악회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 유콘서트
경남교육청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해맑은 상상 밀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