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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도주의의 시험대 아이티 /전진성

지진참사 재난민에게 값싼 동정심보다는 인간존엄성에 대한 보편적 공감 더 중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1-24 20:30:5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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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가슴이 저리다"고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언론에 밝혔다. 중남미 카리브해 연안의 가난한 나라 아이티를 덮친 재앙을 두고 한 말이다. 정작 자신이 폐허로 만든 이라크에 대해서는 그러한 애절한 심경을 토로한 적이 없던 그였다. 이미 각종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아이티의 상황은 실로 급박하다. 지난 13일 발생한 규모 7.0의 강진으로 20만, 심지어 50만여 명이 숨졌을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돌고 있다. 당장 무너진 건물 잔해를 파헤쳐 생존자를 구출하는 일이 시급하지만, 정치는 실종되고 치안은 마비되고, 하루하루의 의식주 해결이 어려운 데 더하여, 각종 질병이 창궐할 기세마저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일단 어떠한 도움이든 절실하다. 숨은 의도를 따지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아이티에 인접한 미국과 미국에 본부를 둔 유엔이 가장 앞장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유엔의 개입이야 당연지사겠으나 지진 발생 직후부터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적극적 의지는 이목을 끌 만하다. 미국 정부는 며칠 사이에 1만2000여명의 병력을 현지에 배치했고 헬리콥터로 연일 구호물자를 나르고 연안에는 첨단의 항공모함까지 대기시키고 있다. 곧 더 많은 병력이 배치될 계획이라고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구호작전'을 선언했고 "아이티인들이 회복될 때까지 곁을 지킬 것"을 다짐했다. 이 같은 미국 정부의 행보에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다. 과거 아이티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는 미국이 제 맘대로 공항을 접수했다고 투덜대고 있으며 중남미의 맹주를 자처하는 브라질도 자국 군대를 파병해 미국의 독주에 쐐기를 박겠다는 태세다. 강대국 미국에 바른말 하기로 유명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한마디 거들었다. "오바마 씨, 의약품과 의사와 물을 보내시오. 하지만 더 이상 군대는 아니 되오."

미국의 행보에 대한 이 같은 우려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1804년 라틴 아메리카 최초로 독립국가의 영예를 얻은 아이티가 '서반구의 최빈국'으로 전락하게 된 데는 미국 대외정책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다. 많은 분석가들이 이번 천재지변을 미국의 군사점령과 정치개입으로 인한 국가적 파탄에 뒤따른 '인재(人災)'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구호 활동이 따가운 시선을 받는 또 다른 이유들이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생색내기가 그 중 하나다. 원래 국제 입양으로 명성을 누려온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커플의 100만 달러 쾌척은, 겨우 이들 부부와 같은 액수의 지원금을 약속한 한국 정부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라"며 국내에서도 반향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왠지 속이 거북해지는 느낌을 준다. 아이티 참사 직후 개최된 미국의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부분 검정색 톤의 의상에 추모리본을 달고 나와 불쌍한 이웃나라를 돕자는 분위기를 띠었는데, 참고로 이날 기자들 앞에서 아이티를 돕자고 발언한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가 특히 주목받은 것은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조르조 아르마니의 명품인 레이스 장식의 검은 드레스 때문이었다.

물론 이들의 순수한 동정심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설사 아무리 괘씸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참여가 무관심보다는 분명 낫다. 문제는 값싼 동정심의 발로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2007년 8월 규모 7.9의 강진으로 600여 명이 사망했던 페루 피스코의 예에서 보이듯, 즉각 세계의 이목을 끌어 수천 명의 구호인력과 수백만 달러가 지원되었음에도, 피스코는 지금도 지진의 폐허로 가득하다고 한다. 소위 '불쌍해서 돕는' 것은 내 동정심이 식어버리면 그만이다. 내 관심을 지속시키도록 하는 것은 오로지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소설 '페스트'에서 알베르 카뮈는 갑자기 한 도시를 엄습한 페스트에 맞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들이 맞서 싸운 것은 인간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냉담이었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

아이티의 재난은 우리에게 참된 인도주의의 가치를 되새기게 해준다. 인간의 보편적 존엄성보다는 '친북 인도주의와 반북 인도주의'의 정치적 구분을 우선시해온 우리 사회에 말이다.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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