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시론] 작가는 말할 수 있는가 /이명원

현실과 진실의 통찰…작가의 임무

타인의 비극적 삶이 자신에게 미칠때 이를 말할 수 있을까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1-18 20:56:03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해 12월 24일 소설가 유채림 씨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재개발의 와중에 철거민이 되었고, 또 공권력의 폭력적인 진압의 와중에 죽임을 당한 도시 영세자영업자들과 이들의 슬픔에 공명했던 작가들은 절규 속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외쳤다.

이 외침은 역설적인 것이었다. 사람이되 사람됨의 존중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절규가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말을 낳았다. 이 외침 속에는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침묵 속의 사물로 격하되는 현실에 대한 항의와, 사람이되 보이지 않는 유령으로 간주되는 현실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이 내포되어 있었다. 삶의 장소로부터 뿌리 뽑히게 되면 삶의 근거를 잃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 그러한 시어에 가까운 구호를 낳았다.

삶의 전면적인 비인간화와 인간의 유령화는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산업화의 초기 이러한 비극이 강림한 장소는 농촌이었고, 더 이상 농민이기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와 저임 노동자가 되었다.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땅과 인간과 화폐가 상품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차라리 모든 인간은 잠재적 유령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자영업자가 삶의 장소에서 추방되고, 임금노동자가 직장에서 퇴출되고, 헐벗은 채 거리를 유랑하고 있는 노숙자들이 도시에서 미끈하게 추방되어 시설에 격리되는 일은 결코 예외상황이 아니다. 명백한 진실은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할수록, 아니 정상작동의 근거가 이렇게 비인(非人)과 유령의 대량생산의 비정한 승자독식의 현실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조차도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자본이고, 그런 점에서 단지 비정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비극적인 인간조건은 이제 사물화의 마지막 완성단계를 향해가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작가들의 전언은 단순히 이 비극을 멈추라는 요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사물화 메커니즘에 대한 온몸으로의 저항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난민을 정치적 주권의 부재에서 비롯된 헐벗음의 상태로의 전락이라고 생각하지만, 산업화의 악몽에서 확인할 수 있는 냉정한 진실은 오늘의 인간 모두가 난민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여러 가지 원인으로 삶의 장소에서 뿌리 뽑히거나 추방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자각하고 있지 못할지라도 실상은 난민화의 거대한 메커니즘의 톱니바퀴처럼 기능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경제난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됨의 가장 기초적 토대가 붕괴되는 것과 동시에 일련의 모욕적 폭력에 가감 없이 노출된다는 점에서 난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난민적 상황에 대한 증언과 항의뿐만 아니라, 그것이 시작되기 전 역사상 유구했던 인간공동체의 연대와 협동, 우애와 상호의존의 상상력을 상기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동시에 그는 현실의 잡다한 세부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명백한 진실을 통찰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아우슈비츠는 단지 폴란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을 관통해 오는 보이지 않는 아우슈비츠는 도처에 있다. 체제에 의한 학살의 비극은 광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감각과 지각기능을 불감증의 상태로 전락시키는 일상적이면서도 은폐된 학살은 포클레인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 잿더미 안에 이미 강림해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은폐된 비극을 밝은 태양 아래 드러내는 자이고 그것을 명명하는 자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소설가 유채림 씨는 그 자신이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용산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생계를 위해 아내가 운영하던 칼국숫집 '두리반'의 집기들이 용역들에 의해 내던져지고, 건물주와 개발회사의 계약에 의해 그는 맨몸뚱이로 추방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추방된 타자들에 대한 공감과 현실의 모순에 대한 지극한 통찰을 본연의 소설 쓰기의 의미로 간주했던 작가가 삶의 장소로부터 추방된 사건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타자의 비극적 삶이 자신의 한계상황이 되었을 때, 작가는 말할 수 있는가. 이십여 일이 넘는 철야농성을 진행하면서, 소설가 유채림 씨는 그런 고민에 빠져 있다. 여기도 사람이 있다.

문학평론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쓰앵님’에 놀라고 ‘동백이’에 위로받은 한 해
  2. 2근교산&그너머 <1155> 거제 망산
  3. 3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직접 고용
  4. 4부산시립합창단 예술감독에 이기선 명예교수
  5. 5게릿 콜, 투수 첫 ‘3억 달러 사나이’
  6. 6[서상균 그림창] 원더골, 매직…미러클
  7. 7차기 총리 후보로 정세균 급부상
  8. 8부산시 선정 ‘2019 우수 착한 가격업소’ <상> '논두렁추어탕' '가빈삼계탕'
  9. 9비콘그라운드 조성 본격화…망미단길 상권 ‘들썩’
  10. 10유라시아 네번 횡단 김현국 씨 “시작점 부산, 의미·홍보 고민을”
  1. 1‘원주·부평·동두천’ 4개 주한미군 기지 조기반환
  2. 2靑 ‘차기 총리‘ 정세균 검토… 김진표 카드 난항
  3. 3예산안 국회 통과 … 전재수 “자유한국당, 누가 못 들어오게 했나”
  4. 4스쿨존 내 사망사고 가중처벌한다, ‘민식이법’ ‘하준이법’ 국회 본회의 통과
  5. 5거제1동, 거제센트럴자이 입주자대표회의 사랑의 연탄나눔
  6. 6폼페이오, 러 외무장관 회담 “北의 완전한 비핵화가 우리의 공동목표”
  7. 7사상구 어린이집연합회, 이웃돕기 성금 기탁
  8. 8‘본회의 통과’ 민식이법은 … 어린이 교통 안전 강화 목적
  9. 9부산 남구 대연1동장학회 장학금 전달
  10. 10남구 감만동새마을금고, 틈새위기가구와 함께 따뜻한 겨울나기
  1. 1노사 상생안 6개월 만에 또…협력사 “파업 땐 공멸” 속앓이
  2. 2오페라하우스 옆 1만5000㎡에 문화공간 ‘FPB존’ 조성
  3. 3삼진어묵 크리스마스 신상품 출시
  4. 4부산 40대 취업자 4년 만에 최대 폭 감소
  5. 5故 김우중 회장 빈소 신동빈·박찬구 등 재계 조문 행렬
  6. 6금융·증시 동향
  7. 7증시 불안에 대기성 자금 늘었다
  8. 8 부산경제진흥원 중기부장관상 2관왕 外
  9. 9바빠도 한술 뜨는 ‘편리미엄’ 음식이 뜬다
  10. 10주 52시간 근로제 중기에 1년 계도기간, 특별연장근로도 확대…워라밸 후퇴 논란
  1. 1장건웅 도란 징계 관련 소신발언... “제 밥그릇으로 이니시에이팅 했다”
  2. 2정부 “중소기업에 계도기간 1년” 주 52시간제 보완책 발표
  3. 3경기도교육청, 2020학년도 교사 1차 합격자 발표 … 2239명 합격
  4. 4‘기밀시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중국인 합격 논란
  5. 5제17·18대 해군 진해기지사령관 이·취임식 거행
  6. 611일 제56회 무역의 날 정부포상 및 제25회 경남무역인 상 시상식
  7. 7김성훈 전 경남도의원, 인제대에서 공공분야 일자리 취업 특강
  8. 8화물차, 교차로 지나던 전동휠체어 치어…경찰 “사고 원인 조사 중”
  9. 9과감한 현역교체 진주에서 보여주겠습니다.김영섭 전 청와대행정관 진주을 출마 선언
  10. 10 정부, 중소기업에 ‘주 52시간’ 계도기간 1년 부여
  1. 1kgc인삼공사 배구단 이영택 감독대행 11일(오늘) 데뷔전,서남원 감독 사임 이유는?
  2. 2한국·홍콩 오늘 축구경기 중계 어디서? 역대전적·피파랭킹도 관심↑
  3. 3베트남, 인도네시아 꺾고 SEA 우승...박항서 “이 승리를 베트남 국민에게 바친다”
  4. 4 A·B조 ‘여유’, C·D조 ‘벼랑 매치’ … 16강 마지막 티켓 어디로?
  5. 52019 동아시안컵, 오늘(11일) 홍콩전 … 인터넷 중계 어디서?
  6. 6 E·F·G·H조 최종 순위 … ‘4강 신화’ 아약스 조별 예선 탈락
  7. 7서울 SK와 맞붙는 부산 KT... 부동의 1위 팀과 5연승 팀의 대결
  8. 8토트넘, 뮌헨과 B조 최종전 힘 뺀다... “아직 활용하지 못한 선수들 능력 확인할 기회”
  9. 9박항서 호, 최소 3억의 포상금 받을 예정…현재 연봉도 관심
  10. 10 이번엔 헨더슨 접어버린 황희찬, 두 번 안 속은 반 다이크
국제신문-KLJC 공동 인터뷰
강필구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장 "진정한 지방자치 위해 정당공천제 폐지돼야"
국제신문-KLJC 공동 인터뷰
신원철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 “시도의회 인사권독립과 전문인력 도입 절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부산의 원도심, ‘문화도시’와 어울리지 않는가
감동스러운 도시건축을 만나고 싶다
기고 [전체보기]
‘금융중심지 부산’이 나아갈 길 /정지원
실력중심사회로 청년 보듬자 /임찬일
기자수첩 [전체보기]
‘청소년’ 꼬리표 떼는 데 돈 드나 /권용휘
외국인에 농락당한 부산 안전 /김영록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소프트 에듀케이션’ 대안 교육은 꿈일까
‘솔로몬 심판’과 오늘 우리의 송사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사랑방 음악, 더 풍성해지길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피리와 하프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文 정부, 욕하면서 닮아버렸나 /김태경
한국 출판의 새 성장동력 /정홍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울산의 소멸 위기감
최연소 총리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내심(內心)의 소리 듣는 시간
中 ‘문학 한류’ 이끄는 정지용의 울림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채워주는 맛, 스며드는 맛
짬뽕은 역시 빨간 짬뽕
사설 [전체보기]
진통 끝 예산안 처리…여야 더는 극한 대치 안 된다
한·중·일 정상회담, 외교 현안 실마리 찾는 계기 되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지속 가능한 노인 돌봄, 지역사회도 나서라
정의를 갉아먹는 ‘합법적 불공정’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위대한 예술가, 젠틸레스키
인생 2막에 이룬 성공
이홍 칼럼 [전체보기]
기생충
정신 줄 놓지 말고 다시 도전하자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황교안 단식이 남긴 것
‘니가 가라, 험지’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겨울나무
가을! 그 오랜 기억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역사 속의 와인 스타일
와인 패러독스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격렬한 파도에 조선 정신을 담다
조선 시대 만다라 문양 민화
  • 사하관관사진공모전
  • 충효예글짓기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