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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업광고에서 인문고전교육 희망을 보다 /이지양

영어권 언어·문화 무분별 답습 대신 한국·동양전통을 발전 원동력으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1-12 19:55:1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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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항공사가 시안, 정저우 노선에 진출하면서, '중원에서 답을 얻다' 광고를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다. 국문학과 4학년 전공수업시간에 그 문장들을 써놓고, 해석해 보라고 시켰더니, 國無常强無常弱(국무상강무상약)은 대부분 해석했지만, 生之畜之生而不有(생지축지생이불유)는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 8명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학생들이 한자로 된 것을 왜 해석하지 못할까 의아해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순우리말로 된 고시조 한 구절을 적어 놓고 의미를 물어보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초겨울, 우연히 성균관 앞을 지나다가 조그만 깃발이 가로등 기둥에 즐비하게 걸린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사서삼경과 고문진보에서 발췌한 한문 원문이 적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커다란 현수막에 '중국정부 고위 간부 ○○연수단 환영' 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나라 어느 대기업에 중국의 고위 관료들이 연수를 온 모양이고, 그 일정에 성균관 참배가 포함되었기에 그 분위기를 동양 고전의 글귀에서 발췌한 구절을 쓴 깃발로 북돋우려는 것 같았다.

이 두 광고 사례는 한자문화권에서 영어문화권으로 변화하고 있는 우리 문화와 교육 풍토에 매우 신선한 자극이 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영어 중심으로 영어제일을 강조하다 보니, 의도하진 않았겠으나 자국의 지적 전통이나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을 외면, 단절시키고 말았다. 그것은 충분히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사고의 깊이를 내다버리고, 일상생활의 의사소통 정도를 가능케 하는 생활영어에 온통 시간을 쏟아붓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일상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 매체, 출판계, 대학 교육에 이르기까지 지적 불균형의 심각한 상태가 노출되고 있다. 정신적 뿌리가 잘린 채 표류하는 불쌍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 증상은 예상보다 심각하고, 그 폐해 역시 예상보다 심각하다.

며칠 전 출근 버스 안에서 우연히 라디오로 들은 것이다. 아나운서가 청취자들에게 "우물 정 ○○○○번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떤 청취자가, 휴대전화의 우물 표시는 알겠는데 왜 점이라는 말을 덧붙여서 점을 찍게 만드느냐고 투덜대면서 앞으로는 ○○○○번이라고만 안내하라고 했다. 아나운서는 자신은 '우물 정(井)자'를 말했는데, 청취자께서 우물 표시 뒤에 점을 찍을 줄 어찌 상상했겠느냐면서 웃었다. 회사원이지만 한자 우물 정자를 모를 수 있는 상황이 지금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지난 9일자 오마이뉴스에는 "어머, 저 집 남자는 한밤중에 발가벗고…"라는 제목으로 '풍욕(風浴)'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증점의 고사에서 나온 '풍욕'이란 말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동아시아 지적 전통 속에서는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옛 누각에 '풍욕루'라는 현판이 걸리곤 했는데, 그 기자는 그것을 옷을 홀딱 벗고 바람 쐬는 공간, 즉 '선조들이 나체 파티 하던 누각'처럼 해석하고 그 기사를 쓴 것이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는 또 그 기사를 흥미롭다며 표면 기사로 올려놓았었다.

출판은 어떤가. 출판사들은 온통 영어문화권의 책을 번역하고 소개하기에 급급하다. 우리의 지적 전통,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을 밖으로 전파하는 것은 거의 없다. 2009년 9월 무렵, 글항아리 대표 강성민은 '학계도 매체도 버린 중간필자'라는 글에서 "출판도 해외로 수출해야 영세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중국 시장을 겨냥할 필자, 우리의 지적 전통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할 필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것이 우리나라 학계의 기형적 구조나 편파적 인식과 깊은 상관성이 있고, 우리나라 사회 풍토와 밀접한 현상임을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연봉이 두둑한 사람들은 입을 다문다. 그들 개인이 답답할 일도 없지만 괜히 선각자처럼 나섰다가 자신이 도리어 곤경에 처하고 싶진 않은 것이리라.

이런 상황에서 선망의 대상인 일부 기업의 광고가 동아시아 고전의 글귀들을 원문 그대로 툭툭 제시하면서 새 시도를 하니, 어찌 희망적이지 않겠는가. 부디 자신의 지적 토대를 버리고 남의 말을 익혀 표피적 안부를 나누는 일에 너무 치중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삶의 질을 본질적으로 가꿔나가고 싶다면 말이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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