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조 시절 음서(陰敍)제도란 게 있었다. '잘난'조상이나 부모 덕에 시험도 치르지 않고 관직에 오르는 그야말로 '순혈주의'의 산물이었다. 음직이나 문음, 남행, 음사 등으로도 불렸는데 아마도 공명정대함을 상징하는 양(陽)과 달리 슬그머니 특혜를 주려다보니 음(陰)을 썼지 않나 싶다.
조선 태종 때 3품 통훈대부 이형에게 발급된 '태종11년 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국보 278호)을 보면 땅과 노비, 음직을 수여한다는 내용이 자세히 기재돼 있다. 여하튼 음직은 '가문의 영광'을 대대손손 누리겠다는 특권층의 욕심이 투영된 제도인 셈이다.
고려 때는 5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관리의 자제를 대상으로 음직이 광범위하게 실시됐으나 조선조 들어 3품 이상으로 혜택 범위가 대폭 줄어들었고, 고위 관직에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음직 외에 영직(影職)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쉽게 말해 '말로만' 관직이었다. 실제 근무하지 않으니 월급(녹봉)도 주지 않았다. 오늘날의 명예직으로 보면 되겠다. 나라에서 양민들의 벼슬욕을 채워주기 위해, 다시 말해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만든 제도가 바로 영직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두 자녀 이상을 둔 직원들에게 인사 승진에서 혜택을 주고 근무시간도 편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출산 가산점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혀 나라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음서제도의 현대 버전이라고나 할까, 대단히 파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들에게 있어 승진은 목을 매다는 중대사인데 이를 상품으로 내걸었으니 말이다. 자식만 많이 낳으면 업무 능력에 관계없이 승진가도를 내달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출산 담당 부처 소속 기혼 직원들의 평균 자녀 수가 전체 공무원의 그것에 훨씬 못 미치니 속타는 사정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나 도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아직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따른 가산점도 없고, 국가유공자 후손들에 주어지던 가산점에 대해 사실상 위헌 판결이 내려진 적도 있었다. 또 한 가지 "아이를 못 낳는 것도 서러운 판에 이게 무슨…"하는 비판은 어떻게 잠재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