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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나는 훗날의 내가 궁금하다 /배유안

청소년 소설 쓰고 역사팩션을 쓰고

다음엔 또 뭘 쓰든지 연륜·포용 묻어나는 그런 '나'이기를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2-11 20:40:5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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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처음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게 되는데 매번 그 사람이 한 말에 들어 있는 정보보다는 그 사람의 깊이와 품성을 더 많이 알게 된다. 정보는 지극히 일부이거나 의도적인 것이라 한두 번으로 그 사람을 가늠하기에 현저히 부족하지만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바탕에 깔려 있는 생각의 근간이나 말하는 태도는 대부분 그 사람을 제대로 보여준다. 말은 결국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글 역시 안에 있던 게 나온다. 수필은 물론이고, 허구인 동화나 소설을 쓰고 나도 사람들은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특히나 내가 즐겨 쓰는, 몇백 년 전의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한 작품에서도 그런 말을 들었다. 주제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인공의 대사 속에, 묘사 한 줄 속에 내가 들어 있음을 그래서 알았다. 문학이 작가의 삶의 체험을 녹여낸 것이라는 학교 시절 배운 문학의 기본 답안을 이제야 깨친 것이다. 오래전 타의로 일을 접어야 했던 아쉬움과 분노가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 있어서 최근 내가 쓴 소설의 한 엑스트라로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성을 그린 적이 있다. 그걸 쓰고 나서 치유가 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글을 쓰다가 까마득히 잊었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결국 안에 있던 게 나오는 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글을 쓰는 게 조금은 편해졌다. 쥐어짤 게 아니라 내 안에 귀를 기울여 쓰자는 생각이 나를 자유롭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 기쁨이나 분노로 흔적을 남긴 것, 가슴에 울림을 준 것, 탐구하고 싶은 것…, 거기에 촉수를 세운다. 그런데 내 탐구심을 자주 건드리는 것은 뜻밖에도 역사 속에 있었다. 뜻밖이라는 것은 학교 시절 내내 역사가 너무나 재미없었고 성적도 하위권이어서 거의 콤플렉스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나의 관심사에 대한 답을 옛 사실과 옛 문학에서 종종 건질 수 있었다. 결국 역사가 싫었던 게 아니라 역사교과서가 재미없었던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팩션을 쓰게 된 건 그 때문이다. 독자에게 역사와 고전 속에 들어 있는 삶의 건더기를 보여주고 재미를 주면서 나 자신도 배우고 즐기는 것이다. 오래전에 못한 탐구를 지금, 문학과 함께하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역사소설 작가라 불리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역사를 재해석할 지식과 안목도 없거니와 그쪽에 매진할 계획 같은 것도 없다. 말 그대로 내 촉수를 건드리는 부분에 대한 즐거운 탐구의 결과일 뿐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분노와 청소년에 대한 애정으로 썼던 청소년소설 역시 그들과 나눈 교감들을 써내지 않을 수 없는 의무감에다 내 안에 차서 끓고 있는 것을 쏟아낸 것이다. 역사소재, 과거가 아닌 현재의 청소년 이야기를 쓴 걸 보고 누가 또 뜻밖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청소년소설을 쓸 것인가 하는 질문이나 청소년소설 청탁을 받으면 역시 부담스럽고 난감해진다.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무엇을 쓰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나는 훗날의 내가 궁금하다. 장차 무슨 짓을 새로 하고 무엇을 쓸 것인지 기대가 된다. 그래서 설렌다. 어느 날 TV에 나온, 나이 50이 넘은 한비야가 그랬다. '나는 지금도 내가 커서 뭐가 될지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기대가 된다'라고. 50대 여성의 입에서 나온 '나중에 커서'라는 말에 젊은 MC들은 멍 때리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완전 공감했다. 한비야가 한 수많은 일보다 그 한마디를 통해 나는 인간 한비야의 에센스를 보았다. 한비야는 앞으로 50년 이상을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쑥쑥 성장할 것이라 믿고 그에 대한 설렘을 가진 사람이다. 아마 그녀는 자기 앞의 삶을 바라보고 하루하루 삶의 희열을 느끼며 살 것이다.
내 말과 글이 나를 보여주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도 크겠지만 그래서 잘 살고 싶어진다. 사는 대로 말과 글에 드러나게 되지 않는가 말이다. 나는 작가로 사는 동안 분노에 민감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애정이 깊은 사람이기를 그보다 더 원한다. 대화를 나누면서 깊은 연륜과 따뜻한 포용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작가 분을 몹시 존경하고 있다. 그것이 그동안 살아온 그 사람의 삶의 결과이고 그 사람 자체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훗날, 내가 그러하기를 희망한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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