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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만 원의 행복 /하창식

소박한 삶 꿈꾸는 젊은이에게 따뜻한 시선 보낼 세상이 오길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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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09-11-20 19:49:2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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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막 시작한 딸아이를 만나러 부부 동반으로 서울을 다녀왔다. 출장 잦은 나에겐 서울 가기가, 길 건너 김 서방네 집 들르듯하다. 하지만 직장 생활하랴, 남편과 막내 녀석 챙기랴 바쁜 집사람에게 서울 나들이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말 오랜만의 상경이었다. 이 때문에 서울 사는 친구는 집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막역한 여고 동창생이다. 집사람 덕분에 그녀의 바깥양반과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묻곤 한다. 그런데도 모처럼 서울에 들른 집사람과 직접 만나 수다를 떨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모양이다. 딸아이에게 필요한 살림살이를 이것저것 챙겨주느라 바쁜 집사람이 전화로만 안부를 묻자,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니냐며 점심 시간에 짬을 내보라고 윽박질렀다.

해서, 모처럼 상경한 시골 아낙네 대접한다고, 서울 외곽의 멋진 식당으로 우리 부부를 안내하였다. 부인네들이 모였으니 수다의 끝은 자연스레 자식들 이야기이다. 점심을 들면서 우리에게 들려준 대학생 아들 재환이 이야기는 우리 부부에게도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재환이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독일에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온 가족이 약 5년간 그곳에서 생활하였다. 그 덕분에 독어독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집안의 허드렛일도 척척 거드는 착한 젊은이이다.

그런데 최근 자신의 장래문제에 대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약간의 의견충돌이 있었나 보다. 1년 정도 독일에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도 벌면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단다. 재환이의 생각은 여느 젊은이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재환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우겠다는 일이 바텐더라는 말에 아버지가 놀랐나 보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 바텐더 경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아버지의 주장이었다. 직업의 귀천이 워낙 뚜렷한 대한민국이니까.

그런데 그녀가 들려주는 재환이의 생각이 놀라웠다. 처자식을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밤낮으로 일한다고는 하지만 고객 접대하느라 술에 찌들어 귀가하기 일쑤이고, 주말도 접대 골프 때문에 집에 붙어있는 적이 별로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 불만이었을까. 재환이가 한 말이다. "바텐더면 어때요?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일할 수 있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만 원을 벌어도 행복한 게 아닌가요? 자신의 생활도 없는 그런 생활이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월급이 많으면 뭐해요?"

적게 벌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그게 행복이 아니냐는 아들 생각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리에게 조언을 구했다. 재환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집안에서도 그렇게 착한 젊은이며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어떤 삶이 합리적이며 행복한가를 배우며 자란 재환이에게 힘이 되어주라고.

내가 아는 재환이는 품성이 착하고 성실하기 그지없는 친구이다. 주위의 생각이나 위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을 합리적으로 영위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독일인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재환이다. 우리 부부는 재환이를 굳게 믿는다. 장래에 무엇이 되든, 반드시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장래성보다 월급의 높낮이만 따지며 직장을 구하고, 월급 따라 사흘이 멀다 하고 이 직장, 저 직장 옮겨 다니는 이 땅의 젊은이들을 많이 만난다. 재환이만큼 만 원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면서도 자신은 물론 주위의 시선에 대해 떳떳할 수 있는 젊은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만 원의 행복.' 그 고품위의 철학을 20대의 나이에 깨달은 재환이다. 정말 자랑스러운 이 땅의 젊은이가 아닌가. 우리 부부는 부산행 KTX 열차 내에서 내내 그 기특한 젊은이에 대해 생각하였다.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아무렴, 재환이같이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꿈과 이상을 가진 젊은이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는 대한민국이라면 어떻게 세상이 변해도 좋을 것 같다.

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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