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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우리 속의 연옥(煉獄) /권순익

끔찍한 화재 참사… 반복되는 문제점

너무 쉽게 망각한 우리 모두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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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햇살 아래 하얀 국화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간이 빈소 양편엔 '국제시장 참피온'과 '아리랑거리 상인회'라는 리본이 달린 조화가 놓여졌다. 조화가 아니었다면 길 한 곁의 빈소를 그냥 지나칠 뻔했다. 1평 남짓한, 서너 사람이 함께 절하기도 힘들 만큼 빈소가 좁은 탓도 있지만 가나다라 빌딩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 5층짜리 빌딩의 2층 사격장에서 16명이 화염에 갇혀 단말마의 사투를 벌인 게 불과 6일 전이다. 그 중 11명은 불귀(不歸)의 혼이 됐다. 그런데도 건물 외벽은 그을린 흔적조차 없이 멀쩡했다. 지금도 영업 중이라는 듯 사격장 간판은 반짝거렸고 잇닿은 은행, 옷가게와 수선집으로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바로 옆 먹자골목에서는 허연 김을 내뿜는 어묵 솥 주변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불이 난 사격장과 직선거리로 150m쯤 될까. 14년 전 겨울 남포동 국도빌딩 4층 자이언트 노래방에서는 담뱃불로 인한 실화로 8명이 숨졌다. 그때도 훤한 대낮이었다. 수능시험 때문에 학교가 일찍 끝나자 놀러 왔던 여고생들이 바닥 카페트와 가죽소파가 타면서 내뿜는 유독가스에 쓰러졌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던 사체수습을 후배와 함께 지켜보던 기자는 커피숍에 몸을 녹이러 갔다가 잠시 망연한 적이 있다. 창을 통해 내다본 화재현장 앞으로 연인들이 분주히 오갔고 거리는 언제나처럼 불야성이 돼 있었다. 기다란 네온사인에서 한쪽 전구만 빠진 것처럼, 불 탄 노래방의 까만 공동이 낯설게 느껴졌다. 불과 몇 시간 전 젊은 청춘들이 공포 속에서 울부짖었던 곳이다.

옛날 사람들은 지옥이나 연옥을 만들면서 천길 땅속에 만들었다. 음산하고 어두운, 깊이를 모르는 망각의 강을 건너서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들은 바로 주변에 그런 곳을 만들었다. 친구를 만나고, 연인을 만나고, 아이와 외식하는 일상의 한복판에 문만 열고 들어가면 화마와 맞닥뜨릴 수 있는 연옥을 만든 것이다.

여러 사고 중에서 가장 후유증을 남기는 게 화재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악몽 대인기피증 무력감 불면증 분노에 시달리고 유가족들은 망자의 고통을 생각하며 죄책감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이번 사격장 화재로 변을 당한 일본인들은 가뜩이나 화재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은 민족이다. 지진으로 인한 잦은 화재에 그만큼 시달려온 것이다. 일본 중세도시의 삽화마다 지붕을 잇댄 가옥들 사이로 높다랗게 솟은 화재 감시 망루가 등장하는 건 이런 까닭이다. 그들은 사고수습기간 내내 평정을 유지하다가도 일순간 격정에 "다시는 한국 땅에 발 딛지 않겠다"고 절규했다. 내국인 희생자들은 관광객과는 달리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자신들을 위해 돈벌이에 나섰던 가족의 일원이 형체도 분간하기 어려운 잿더미가 된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내 새끼야, 내 새끼야"만 중얼거렸다고 한다.

사격장 화재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은 하토야마 일본 총리에게 두 번이나 사과했다. "후진국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는 개탄도 있었다. 사격장에 불연성 소재 및 스프링클러 설치를 강제할 수 없는 소방법의 문제가 지적됐고,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국제시장 도로도 도마에 올랐다. 있어야 할 사과이고 제기돼야 마땅한 지적이다. 그러나 멀리 갈 것도 없다. 올 1월에도 영도의 노래방에서 9명이 화재로 희생됐고, 3년 전에는 서울 반포의 실탄사격장에서 이번과 똑같은 화재로 내국인 종업원 1명이 숨지고 일본인 관광객 7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문제가 드러나지 않아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게 아닐 것이다.

국제시장만 해도 소방도로를 문제삼는 게 우스운 일이다. 좁은 도로를 더 좁게 만드는 좌판, 반 노점처럼 길을 잠식하며 이어진 가게들, 미로처럼 뒤얽힌 통로와 도로가 그 시장의 경쟁력이다. 그 때문에 관광객이 찾고 명소가 된 것이다. 수십 년째 도로 타령만 하지 말고 더 많은 소화전을 곳곳에 배치했다면 차라리 사정은 더 나았을 것이다. 소방법의 문제점은 이미 반포 사격장 화재 때도 수없이 도마에 올랐다. 말이 무서운 게 아니다. 행동이 없으니 무서운 거다. 언제 그랬더냐며 잊어버리는 집단건망증 속에 연옥의 문은 더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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