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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헌재결정과 냉소주의 /오창호

미디어법 판결놓고 패러디 난무

냉소주의 만으론 문제해결 안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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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09-11-09 21:20:4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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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상의 문제는 있지만, 미디어 법은 유효하다'. 미디어 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청구소송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놓고 시국이 또 한 번 시끄럽다. 입법을 주도했던 여당은 방점을 후반에 찍어 헌재가 미디어 법의 정당성을 인정했다고 주장하고,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던 야당은 방점을 전반에 찍어 미디어 법은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권한쟁의 심판청구에 대해 헌재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비겁한 결정을 내렸다고 헌재를 비난한다. 여당의 공식입장은 "의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온 사법부의 전통적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수용한다는 것이고, 야당의 공식입장은 "법처리 과정이 불법인데 위헌은 아니라는 것 자체는 헌법재판소가 정치재판을 한 것"으로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디어 법을 무리하게 몰아붙인 여당이 잘못한 것인가? 법 심의절차를 방해하고 표결과정을 물리적인 방법으로 막은 야당이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했는지의 여부를 판정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 모호한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수수방관한 국민이 잘못한 것인가? 누가 정당하고 누가 부당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분간 미디어 법을 둘러싼 정국은 소란스러울 것으로 예측된다. 정국이야 언제나 소란스러운 것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권위가 실추된 자리에 대신 들어설 냉소주의이다.

벌써 냉소주의는 온갖 패러디의 형태로 인터넷 공간을 채우고 있다. '절도는 범죄지만 절도한 물건의 소유권은 절도범에게 있다',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오프사이드는 맞지만 들어간 골은 인정된다', '금지약물 복용은 인정되지만 메달은 유효하다'는 등등 헌재의 판결을 풍자하고 야유하는 패러디들이 난무하고 있다. 패러디가 무엇인가? 그것은 원작의 담론적 권위에 도전하여 이에 대한 코믹한 모방이나 변형, 또는 과장의 방법으로 원작의 의미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의 순수한 효과는 익살이지만 악의가 개입되는 경우 풍자나 조롱이 된다.

냉소주의자는 문화적, 정신적 그리고 특히 도덕적 가치를 경멸한다. 그는 언제나 현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방관자가 되어 모든 것을 비웃는다. 그에게 열정이나 고뇌, 고통은 모두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이처럼 자신에 대한 긍정에 기초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부정에 기초한 도덕을 '노예의 도덕'이라고 말했다. 노예는 주인과 특권층, 억압자를 부정하는 데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빼앗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억압받는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반면 '주인의 도덕'은 지금의 나 자신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가치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을 자신의 도덕으로 삼는다.
냉소주의가 배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패러디를 가지고 기대와 열망을 좌절당한 민중들이 기득 질서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놀이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는 일면 이해가 가지만 생산적이지도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냉소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헌법재판소인가? 정부여당인가? 야당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인가? 그것도 아니면 우리 사회인가?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남의 헌법재판소인가? 정부여당과 야당은 대한민국의 정당이 아니고 어디 다른 나라의 정당인가? 우리가 냉소하는 대상이 사실은 모두 우리 자신이 아니던가? 이 모두가 사실은 한 뿌리, 한 줄기에서 뻗어나간 여러 가지들이 아니던가?

여기에 대한민국이 있다. 그리고 헌재나 정부여당, 야당, 기득권층, 민중 등 모두는 대한민국의 여러 얼굴들이다. 서로 냉소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냉소하는 것이다. 냉소주의가 만연한 곳에 희망이 있을 수 없다. 설령 냉소주의가 정쟁적 차원에서 공격을 위한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냉소주의의 무기로 탈취한 권력은 결코 권위를 가질 수 없고 종국에는 냉소주의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헌재의 판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여당이 야당의 목소리에, 그리고 야당이 여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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