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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한국거래소에서 무슨 일이…" /권순익

거래소 이사장 사퇴과정에선 살아있는 권력과 탐욕밖에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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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중순 한국거래소 부산본사와 서울사무소에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이사장실과 예산관련 부서의 컴퓨터 파일과 서류들이 노란 박스에 무더기로 쓸어담겼다. 기자들의 질문에 수사관들은 "일단 접대비 사용과 관련해 불법적인 사항이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검찰의 말대로라면 범죄 단서도 없이, 한국자본시장의 심장을 '살펴보려' 압수수색한 것이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소동에서 뚜렷한 불법혐의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권력이 거래소를, 거래소의 누군가를 겨누고 있다'는 메시지는 확실하게 남겼다.

압수수색 바로 며칠 전 이정환 당시 거래소 이사장은 부산 민락동의 사택에서 "검찰수사가 시작될 것"이란 '통첩'을 받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아들과 며느리를 맞아 처음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다. "'올게 오는구나'했지만 하필 며느리 맞는 날 그런 통고를 하다니…." 한참 지난 뒤에 그는 말했다. "애꿎게 다칠 수 있는 거래소 직원들을 보호하려면 '그들' 뜻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이사장에 취임한 지 3개월을 조금 지났을 때다.

이정환씨는 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월 거래소의 2대 이사장에 선임됐지만 이 정부가 원한 인사는 그가 아니었다. 그해 초부터 이명박 당선자 캠프의 인사가 차기 이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설이 실명까지 거론되면서 흘러나왔다. 그즈음 거래소의 골프접대비와 임직원의 임금이 과다하다는 감사원의 발표가 있었다. 이 모든 움직임들이 거래소 내부인사 출신 이사장을 바라지 않는다는 시그널로 읽혀졌다. 그러나 부산금융도시시민연대 등 부산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낙하산 인사'에 대한 거센 반대가 일어났고 이 씨는 9명의 추천위원의 투표 끝에 5대 4로 이사장에 선임됐다. 교수 등 사외이사로 구성된 추천위원 중 이 씨를 지지한 이들은 그후 교체됐다. "정권 과도기 탓에 제사람 심기에 실패한 권력층의 울분이 크다"는 소문이 거래소 안팎에서 돌았다. 압수수색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올 1월에는 자본시장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갔다. 기획재정부가 거래소를 인사·예산에서 정부 간섭을 받는 준정부기관, 공공기관으로 지정한 것이다. 정부 지분은 단 1%도 없는 민간기업을 말이다.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즈는 '한국이 증시를 국가 통제에 집어넣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한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정부가 거래소 운영에 개입하는 나라는 슬로바키아뿐이었다. '기업 프렌들리' '민영화'를 외쳐온 이 정부 아래에서 21년 전에 민영화된 거래소가 다시 공기업으로 돌아갔다. 이 이사장은 "사퇴할 테니 공기업 지정에서 풀어달라" 고 했다.

이정환씨는 지난 13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3년 임기의 꼭 절반을 넘기고서다. 그가 3일 뒤 사내 전산 게시판에 올린 고별사에는 "검찰 압수수색 수사와 감사기관 압박, 금융정책 당국의 집요한 협박과 주변 압박도 받았고, 이 과정에서 평소에 존경하고 좋아하던 선후배까지 동원됐다"는 주장이 담겼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이사장의 사퇴는 자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의중에 두고 있다는 인사가 이미 차기 이사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현실을 진 위원장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이정환씨는 2005년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가 통합한 증권선물거래소의 초대 경영지원본부장을 맡기까지 근 30년간을 중앙정부에서 일한 경제관료 출신이다. 공직을 떠난 것은 노무현정부에서다. 그가 어느 정권의 사람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금융시장, 그 금융시장의 핵인 거래소의 수장으로 '민영화의 원칙'을 지켜내려 했던 그를 두고 현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정책기조와 다르다고 할 이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기자가 이정환씨의 사퇴를 통해 보는 것은 전 정부와 현 정부 인사의 갈등이 아니다. 시장을 보는 시각 차이는 더욱이나 아니다. 그저 원칙도 철학도 없이 "힘있을 때 자리 챙기자"는 살아있는 권력과 그 주변인사들의 탐욕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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