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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타인을 투명인간으로 보지 말길 /서진

무슨 일 하시나요… 오피스텔 입주 9개월만의 질문에 느꺼워져 답 못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0-09 19:53:16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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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부터 경성대학교 근처의 오피스텔에 집필실을 마련했다. 남들처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출퇴근하면서 규칙적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다행히 광안대교와 바다도 약간 보이는 전망 좋은 층의 사무실을 임차했다. 혼자 있기는 넓지만 그렇다고 남과 함께 있으면 집필실을 마련한 의미가 없다. 글은, 특히 소설은 혼자 쓰는 것이다. 이곳은 디자인 및 무역 등의 여러 업체가 입주되어 있어서 나도 그들처럼 일을 해야겠다는 분위기가 잘 조성되었다. 비용 부담이 되더라도 집필실을 마련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오피스텔에서 가끔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보통은 여자인 경우가 많다) 한참 동안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경우가 그렇다. 지난밤 만났던 남자 이야기, 결재해야 할 서류, 오늘 저녁 약속, 내가 듣기 싫든 말든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 그 좁고 삭막한 공간에는 나 이외에도 몇 사람이 더 있다. 그들은 통화내용이 들리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빨간 엘리베이터 숫자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통화를 하는 사람은 1.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통화 내용을 들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2.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을 투명 인간으로 보고 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오전 11시 즈음에 남자 화장실 대변기에서 사무를 보는 남자다. 처음엔 급한 전화를 받고 있는 줄 알았다. 통화 내용도 영업에 관련된 업무다. 이 남자는 1. 문을 닫고 있어서 밖에 누가 있는지 모르거나 2. 있어도 안 보이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독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이야기 했는데도 다음 날 배달된 신문, 골프를 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명함을 건네는 골프용품 업자, 치킨을 한 번도 시켜 먹은 적이 없는데도 매일 현관문 앞에 붙어 있는 전단지…. 다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알겠지만 억지로 뭔가를 떠안기려고 한다. 싫다고 말해본들 소용없다. 나는 그들에게 돈을 벌게 해줄 고객일 뿐이다. 그들에게 나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엘리베이터에서 통화하는 사람으로 돌아가자. 소리에 예민하기 때문에 유난히 신경이 쓰였다. 처음엔 귀를 막으려고도 하고 핀잔을 주려고도 했다. 휴대전화를 빼앗아 바닥에 던져버리는 상상도 했다. 그러나 다들 무덤덤하게 참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도 그들처럼 무덤덤해지고 있다. 귀로는 통화 내용이 들리지만 안 들은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 화장실에 가서 영업사원의 대화를 듣더라도 안 들은 척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전단지가 붙어 있더라도 그냥 떼어 휴지통에 버리면 그만이다. 낯익은 사람이 복도를 지나가더라도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에게 투명 인간이기 때문이다.

집필실 옆 호에는 키가 땅딸막하고 나이 많은 사장과 두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회사가 있었다. 간판도 달려 있지 않고, 가끔씩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통화하는 등 뭔가 수상한 낌새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어제, 순식간에 그 사무실이 이사를 해 버렸다. 짐꾼들이 우르르 오더니 이사는 한 시간도 안 돼서 끝나버렸다. 청소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 놓았기 때문에 슬쩍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당연히 사무실 모양은 내 것과 똑같다. 45도 기울어진 창문과 화장실의 위치, 벽지까지 완벽하게 똑같은 공간이다.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당연히 할 필요가 없지만) 가 버린 사람들이 서운하게 느껴졌다. 똑같은 모양의 사무실에서 각자 일하고 있는, 이 거대한 건물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텅 빈 사무실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랜 선과 전화선이 지저분하게 얽혀 있었다. 바다가 약간 더 보이는 창가에서 한참을 서 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저기 누구십니까?" 뒤를 돌아보니 휠체어를 탄 남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새로 입주할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옆 호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최소한 그 남자에게 나는 투명 인간이 아닌 듯했다. 나는 뭔가 대답을 해야 하는데 울컥하는 것이 솟아올라 뭐라고 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질문은 9개월 동안 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들은 질문이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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