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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교수 천국 강사 지옥 /장희창

대작 번역 강사, 반지하방 전전해

그들이 대접받는게 인문학의 과제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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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09-09-30 21:23:22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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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규현이는 25년간 강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불문학계에서 알아주는 번역가다. 셰르 '헤르메스', '천사들의 전설', 푸코 '성의 역사', '광기의 역사', 뒤마 '삼총사', 아폴리네르 '알코올', 보드리야르 '기호의 정치경제학' 등등. 보통 학자라면 그 중 한 권만 번역해도 평생의 업적이 될 고전들을 즐비하게 우리말로 옮겼는데도 쪼들리며 산다. 신분이 강사라서 그렇다. 쥐꼬리만큼 나오는 인세를 제외하면 한 달 평균 임금이 100만 원이고, 방학 동안에는 그마저도 없다. 지금은 아내한테 쫓겨나 4평 원룸에서 깨알 같은 글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살고 있다.

후배 성광이도 20여 년 강사 생활을 하고 있고, 독문학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번역가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카프카 '소송', '성', '변신', 토마스 만 '마의 산',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레마르크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등등의 대작을 번역했지만 현재 반지하 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내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기만 해도 만족이다." 별다른 희망도 출구도 없다는 자조적인 발언이며, 신산노고의 역경이 스며 있는 반어법(反語法)이다.

후배 K는 빈약한 수입을 둘러싸고 부부 싸움을 벌이다, 홧김에 아내와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하고 저세상으로 갔다. 또 어떤 후배는 화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대한민국에서 강사는 파트타임 노동자이고 지식인 노예일 따름이다. 같은 시간을 강의하는 경우 교수와 강사의 임금 차이는 대략 10배 정도다. 하는 일이 완전히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에 따라 이 같은 임금 격차를 용인하는 곳이 우리의 대학 사회다.

강사라는 '타자'가 대학을 떠돈다. 그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영락없는 이주민 노동자 신세다. 연구실도 없고, 학생과 대학 당국으로부터 존경도 대접도 못 받는다. 복도에서 식당에서 전임교수의 연구실 앞에서 멈칫거리며 서성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대학교육의 절반은 강사들 몫이다. 절반 없는 전체가 있을 수 없듯이, 강사 없는 대학은 있을 수 없다. 강사가 없으면 교수도 없다. 어떻게 보면 교수들은 강사라는 지옥의 바다에 떠 있는 섬일 뿐이다. 바로 앞 바로 옆 지옥의 바다에서 수많은 인명이 허우적거리고, 때로는 익사하고 때로는 자살하는데도 교수들은 말이 없다. 나는 이렇게 단언한다. 교수 천국! 강사 지옥!

박정희 정권 시절 교권통제, 분할통치의 목적으로 강사의 교원지위를 박탈했던 고등교육법의 결과인 이러한 거대한 균열 앞에서 교수는 교수대로 강사는 강사대로 어쩔 줄 모르고 제 갈 길을 따로 간다. 절반과 절반이 따로 노는 분열 상태에서 대학 사회의 발전은 물론이고 학문의 진작도 어렵다. 균열의 언저리에 냉소와 방관의 기운이 맴돌고, 눈물과 당혹 속에 시대의 파고(波高)를 넘어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에너지는 소진되고 만다. 신바람 나는 학문적 열정은 애초부터 싹수가 노랗다. 강사들의 빈곤과 자신들의 상대적인 부가 서로 맞닿아 있음을 아는 교수들도 마음 편할 리 없다. 그리하여 교수나 강사나 그 폐쇄적인 체제의 희생자가 된다. 오늘날 학문 사이의 소통과 통섭을 말하는 것이 유행이지만, 교육 집단 내의 균열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그러한 구호는 구두선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인문학의 위기 운운하지만 언제 우리 사회에 인문학이 제대로 있기나 했던가? 혹은 원룸에서 혹은 반지하 방에서 학문의 토대를 놓으며 묵묵히 정진하고 있는 가난한 학자들, 그들은 불평등과 무지와 몰이해라는 철벽을 느리게나마 뚫고 있는 인문학의 전사들이다. 그런 그들이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우리 사회 후진성의 또 다른 징후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시대 인문학의 과제는 타자를 끌어안는 것이고, 공존과 연대와 통합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내 친구 규현이는 생활은 어렵지만 술값은 잘 낸다. 규현아, 술값 절대로 내지 마라, 이런 식으로 속내를 드러냈는데도 어느새 그가 술값을 내고 말았다. 월급깨나 나오는 사람은 있는 거 지키느라 수비 자세에 익숙해 돈 잘 안 내고, 별로 없는 사람은 기왕 버린 몸, 이판사판 술값 잘 낸다. 이건 필자가 오랜 음주 편력 후 나름대로 깨달은 진실이다.

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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