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어로 '정복'이란 뜻의 '블라디'와 '동방'이란 뜻의 '보스토크'가 합쳐진 이름이다.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가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청(淸)에게서 할양받은 땅이다. 우리 선조들은 해삼위(海蔘威)라고 불렀다. 이곳 바다에 해삼이 많이 났기 때문이라고. 해삼위란 지명이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먼저 생겼다. 광개토대왕 시절엔 고구려 영토였으며 발해의 땅이었기 때문일 터이다.
연해주의 주도 해삼위는 우리 겨레의 눈물과 땀이 서린 도시다.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이주했다는 기록에 이어 1893년(고종 35년)엔 이주민이 6만여 호, 30만 명에 이르렀다고. 조선 조정은 1902년 이범윤(李範允)을 간도 및 해삼위 관리사로 파견해 이주민을 보호하게 했다. 국권을 상실하자 이범윤 선생은 연해주를 중심으로 '충의대'를 조직해 본격적인 의병활동에 나섰다.
독립운동의 해외 중심지를 상하이, 하와이, 미주로 생각하기 쉽지만 가장 중요한 발원지는 러시아령 연해주다. 3·1운동이 일어나자 해외에선 제일 먼저 기념식을 거행했고 상하이에 앞서 임시정부가 수립된 곳이 블라디보스토크다. 안중근 의사의 '대한의군' 근거지도 연해주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선 한인학교와 '해조신문''대동공보''대양보' 등 한글신문이 발간돼 계몽운동도 꽃피웠다. 연해주는 1937년 고려인 20만 명이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눈물의 땅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일본이나 중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한인 이주자들이 적국의 첩자 노릇을 할 것이란 오해 때문이었다.
어제 본지 29면에 실린 연해주 독립투사들의 화보가 눈길을 끌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아르세니에프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된 사진들로 현지 한국총영사관의 요청으로 첫 공개된 것. 80여 명으로 구성된 한창걸 부대와 러시아식 군복차림에 장총을 든 독립군 사진이 대한민국의 뿌리가 그들임을 다시 일깨워 준다. 러시아의 독립지사인 백추(白秋) 김규면(金圭冕)선생과 동지들의 사진을 보며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하는 광복절 노래 한 구절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