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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장산 찔레꽃을 아시나요 /장희창

슬프다, 개발과 이익의 신이 해운대를 덮쳤다

찔레꽃 아낄줄 아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8-12 20:56:51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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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해운대 장산 정상 일대에 군락을 이루고 있던 찔레꽃 나무들이 하룻밤 사이에 모조리 뽑히고 뭉개졌다. 해운대구청이 전망대 공사를 벌이면서 불도저로 밀어버린 것이다. 속세의 번잡을 피해 힘들게 산을 올라온 등산객을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던 하얀 찔레꽃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뿐인가. 거센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자라던 수령 수십 년의 졸참나무 굴참나무 그리고 키 작은 소나무들도 무참하게 잘려나갔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는 듯 바다를 내려다보며 관조하는 듯하던 온갖 형상의 바위들도 본래 모습을 잃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황량한 현장에 나무판대기를 깔기 위한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다. 인근의 또 다른 전망대 공사장. 부산 앞바다와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하던 너럭바위에 수십 개의 대형 철제 볼트가 박혔다. 박히는 순간 볼트의 아랫부분이 바위 속에서 옆으로 벌어져 다시 빠질 수 없게 되는 고성능 볼트란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장산의 이마빡에 대못들을 박은 꼴이다. 장차 그 구멍으로 물이 스며들고 얼어붙게 되면, 인고의 세월을 견딘 너럭바위는 균열을 일으키고 쪼개질 것이다. 아름답고 착하고 굳센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영겁 세월 바다를 응시하던 바위에 대못을 박는 이 시대의 막개발은 자연과 우리의 영혼에 커다란 상처로 남을 것이다.

전망이란 무엇인가? 저 멀리 바다를 그저 편안하게 내려다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땀 흘려 올라온 등산의 과정이 없으면 전망도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정직하게 산정에 올라 변칙과 반칙이 활개치는 속세를 굽어보며 미소를 날리는 것, 그것이 전망이다. 이글거리는 욕망의 도시를 벗어나 바위에 기대 도시락도 까먹고 소나무와 대화도 나누며 우리의 고향,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전망의 중심에 방부제로 푹 절인, 돈냄새 풀풀 나는 나무판대기를 깔아놓으면 우리는 어디서 쉬란 말인가? 개발과 이익이라는 눈먼 신이 쓰나미처럼 해운대를 덮치고 있다.

해운대 8경의 하나로 쉼 없이 흘러온 해운대 춘천도 원형을 상실하고 말았다. 하천을 정비한다고 나무를 뽑고 강바닥을 긁어내어 편편한 욕조처럼 만들더니, 이번 큰비에 모조리 쓸려갔다. 인위적으로 공사한 부분들만 박살나고 말았다. 강바닥은 파이고 자갈들이 제멋대로 쌓여 엉망이 되었다. 춘천 맑은 물에 고기가 뛰어논다는 춘천어약(春川魚躍)은 옛말이다. 이제 갈수기가 오면 춘천 정비사업의 참상은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하천의 폭을 인위적으로 넓히고 수십만 년 형성된 단단한 바닥을 파헤쳐버렸기 때문에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은 연약해진 지반으로 스며들어 춘천의 중하류 유역은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乾川)이 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그리고 군데군데 고인 물에는 피라미와 버들치 대신 모기들만 서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분노가 치밀고 속이 쓰리다. 그래도 허둥대지 말고 선현의 말씀을 참조해보자. 생태적 상상력의 보고인 '장자'에 이런 우화가 있다. 중원에 사는 '혼돈'을 찾아온 친구들이 융숭한 대접을 받고 답례를 한다. 친구들은 혼돈에게 눈과 귀와 입과 같은 구멍들이 없어 답답할 것이라 판단하고 구멍 일곱 개를 뚫어주었더니 마침내 혼돈은 죽어버렸다. 대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작위적인 행위가 얼마나 가소롭고 또 위험한가를 말해주는 우화이다. 자연 앞의 겸손이 그 핵심적인 메시지다. 고전의 힘은 곱씹을수록 그 깊은 의미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데 있다. 그러나 고전의 진단이 유달리 실감난다면 그것 또한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우리 시대가 그만큼 더 중한 병을 앓고 있음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우화를 이렇게 해석한다. 춘천을 뒤집어 파고 장산의 나무들을 베어내면 해운대가 망가지고, 4대 강을 뒤집어 파면 금수강산이 초토화된다.

물론 반전(反轉)의 희망은 있다. 장산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사를 막기 위해 휴가를 반납하고 매일 정상에 오르는 주민들도 있다. 일부 주민들은 등산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전망대 설치 공사의 부당함을 알리기도 한다. 이들이 희망이다. 돈 안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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