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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생명 건질 권리를 지키는 세상을 위하여 /장혜영

신종 플루 창궐 타미 플루 쟁탈전 생명 위한 약품 삶 위협하는 상황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5-27 21:34:2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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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평화방송에서 방영된 '신부님은 해결사(Don Matteo, 2000~2008)'라는 이탈리아 TV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 그대로 구비오라는 작은 마을의 노(老)신부가 마을의 크고작은 범죄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내용인데, 가톨릭 국가 이탈리아답게 용서와 화해, 반성의 종교적인 내용이 많지만 가끔은 현실에서 한번 되짚어볼 문제들을 제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한 의학자가 무허가로 신약을 개발해 쓰다가 잡혔는데 왜 그런 짓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줘야 하는 의사입니다. 그런 제가 약을 만든 뒤 제약회사와 계약을 하고 특허 판매권을 주면 돈 있는 부자들이나 그 약을 사 쓸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정말 고통에서 구해주고 싶은 가난한 사람들은 그 약을 살 능력이 안되니까요. 저는 장사치가 아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인데, 왜 제가 그렇게 약으로 장사를 해야 됩니까?" 현실을 망각한 한 이상주의자의 망상이라고 흘려버리기엔 신종 플루로 전 세계가 홍역을 앓고 있는 작금의 세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타미플루(의학명:오셀타미비르)'는 한국인 학자(김정은 박사)가 포함된 미국의 질리어드 사이언시스 제약 개발팀에서 만들어 특허를 얻은 뒤 스위스의 에프 호프만-라 로슈 리미티드(로슈홀딩으로도 표기·이하 로슈)사에 독점 제작 및 판매권을 넘긴 인플루엔자 치료제다. 발병 이후 48시간 안에 복용을 시작해 닷새간 먹을 경우 조류 독감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 약품은 최근 멕시코발 신종 플루에도 똑같은 효과가 있어 전 세계 국가들이 이 약을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을 벌였다.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한 치료제이니만큼 로열티(특허사용권)를 포함한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인 데다 세계 단 한 회사에서만 독점 제작권을 갖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약의 생산량이 한정될 수밖에 없어 정보에 빠르고 재정이 넉넉한 선진국들은 이 약을 미리 대량 확보해 버리고 실제로 인플루엔자가 창궐하는 개도국에서는 약을 못 구해 허덕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 신종 플루의 발생지인 멕시코의 경우 국가가 갖고 있는 타미플루의 양 자체도 적을 뿐 아니라 민간 의료보험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은 비싼 사(私)의료 보험에 가입하지 않기 일쑤라 병원 자체를 아예 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이들이 비싼 타미플루를 사서 발병 48시간 안에 재빨리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행히 감염자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만일 이 신종 플루가 크게 창궐하여 사망자가 속출하였을 경우 치료제를 눈앞에 두고도 개발자가 가지는 '특허'와 계약한 회사가 가지는 '독점 생산권'이라는 제도에 막혀 사람들이 죽는 것을 그저 쳐다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류독감이 유행했던 2005년을 전후해 이러한 지적 재산권의 문제를 보류하고 약을 빨리 생산해서 사람 목숨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는, 특허의 배타적 권리에 대한 '강제 실시권'을 타미플루에 부여하라는 압력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거기에 대응해 로슈사는 세계 각국의 제약 회사들과 계약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강제 실시'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우려해 자신의 독점권을 유상으로 판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로슈 본사에서만 제작 생산을 했던 때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타미플루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 실시권'은 아직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인플루엔자가 창궐하기 일쑤인 현 세상에서 '제약 기술'이라는 엄청난 기득권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나누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싫은 세계 각국의 입장 차이 때문이다. 강제 실시권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결국 카피약(복사약)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실효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역시 약의 민주화가 아닌, 또 다른 선진 제약회사의 이익을 높이는 데 이용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인간을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없애고 진정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많고 싸울 일도 많다.

멕시코 이베로아메리카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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