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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하창식

좋은 인연·악연…우리의 선택 나름

다시만날 그날위해 아름다운 선택 지금 준비하자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3-27 20:42:32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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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신 지 한 달 되었다. 그분의 사랑과 감사 그리고 용서의 삶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셨다. 가톨릭교회 추기경이란 고위성직의 품위에 맞갖은 삶,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셨던 분이셨다. 종교나 계층, 이념과 빈부의 차이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셨던 그분의 죽음은 남은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육신은 이 땅을 떠나도 그분의 두 각막은 이 땅에 남은 또 다른 두 사람의 눈에 이식되어 그분들께 새로운 삶을 갖도록 하였다. 추기경의 선종 이후 한 달 만에, 각막을 포함한 장기기증 서약이 무려 4000여 건에 이른다는 소식이다. 예년의 경우 연 평균 3000여 건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사랑의 바이러스'라 아니할 수 없다. 그분이 죽기까지 남긴 사랑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그분은 각막을 이식받은 분들의 눈을 통해 우리의 가슴 속에 다시 살아 우리랑 만나고 계신 것은 아닐까 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듯, 우리는 숱한 인연으로 얽힌 삶을 살아간다.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고용인과 피고용인, 부부와 연인, 친구와 친지 등등, 우리 삶을 통해 무수히 엮이는 관계 속에서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좋은 인연으로만 엮이는 관계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살다보면 좋은 인연 못지않게 악연도 적지 않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악연 또한 인연이란 이름으로 우리 삶에 다가올 수도 있다.

추기경의 각막 이식 소식을 들으며 생각하였다. 내가 어제 만난 그 사람은, 오늘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은, 무슨 인연으로 나랑 관계를 맺게 된 것일까.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고, 윤회로 말미암아 전생에서부터 있었던 인연 때문이라고 믿거나, 숙명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나, 사람과의 만남과 관계가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한결같을 것이다. 하지만 악연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을 악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디 인연을 맺는 일뿐이랴. 어제 만난 그 사람, 오늘 만난 이 사람과 내일 또, 혹은 10년 후 어떤 자리에서 또 다시 다른 인연으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 혹은 그 사람들과의 인연이 언제 어떻게 비롯되었든, 일단 맺은 인연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적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철학자 샤르트르가 한 말로 기억된다. "인생은 선택이다. B(birth·출생)와 D(death·죽음) 사이는 C(choice·선택)이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우리는 숱한 선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결혼도 선택이고 취업도 선택이다. 인연도 선택이다. 섭리 윤회 숙명이나 우연, 어떻게 맺어진 인연이라도 좋은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고 악연을 좋은 인연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선택일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말이다. 내 입에 담는 말은 30초지만, 상대방에겐 그 말이 30년 동안의 응어리가 될 수 있다.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좋은 인연으로 맺은 사람들 사이가 평생의 악연으로 바뀔 수도 있다. 좋은 인연을 맺고 또 그 좋은 인연을 계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닌가 한다.

추기경의 각막을 이식받은 분들은 세상의 밝은 빛을 다시 보게 되었다. 추기경은 그분들의 삶 속에서 밝은 빛을 보게 하는 각막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도 볼 수 있다. 추기경의 각막처럼,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따뜻한 희망과 사랑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안겨주고 세상에 빛을 주는 사람이, 또는 그러한 것이 된다면 죽음 후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가능하면 멀리하고 싶어 했던 그 사람, 혹은 그 사람들과 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내일, 10년 후, 아니면 먼 훗날, 그분과 그분들과 다시 만날 수도 있는 그날을 위해 지금 착하고 아름다운 선택을 슬기롭게 준비하도록 해야 하겠다. 가장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는 것,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 있을 테니까.

부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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