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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성찰통해 분노해소 가능할까 /탁석산

국회의원 집단 외유 신입사원 초임 삭감

정부의 환율 무대책 무기력 분노 가득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3-08 20:20:3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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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는 나에게 조용한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경제 위기로 모두 다 힘들고 모두 다 어렵기 때문에 자신만 분노를 느낀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는 요즘 소리 없이 분노를 느끼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먼저 국회의원들을 보자.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머리를 잡고 육탄전을 벌이던 의원들이 회기가 끝나자마자 여야가 사이좋게 외국에 나가고 있다. 시찰이다 지원외교다 명분이야 어쨌든 죽일 것처럼 싸우던 의원들이 국익을 위해 하나가 되어 다닌다니 기뻐해야 할 일 아닌가. 하지만 나는 이런 의원들을 보고 배신감을 느낀다. 결국 국회의원은 국민을 팔아서 사는 직업일 뿐이다. 여든 야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직종인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역시 국회의원이란 자리가 최고인 것이다. 자리를 지키는 데 그깟 몸싸움쯤이야. 국회의원 수를 30% 줄이자는 제안이 얼마 전에 야당에서 나왔으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신입사원의 연봉을 10% 이상 줄여서 채용인원을 늘리겠다고 한다. 역시 조용한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렇게 실업률을 낮추는 데 관심이 많다면 신입사원이 아니라 임원들 연봉부터 대폭 삭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너가 어떤 희생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경영에 위기가 닥치자 역시 약자인 신입사원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 난리니까 적은 연봉이라도 올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연봉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정부를 보면 분노를 넘어 체념에 빠지게 된다. 뭐 하나 시원하게 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무엇 무엇을 하겠다고는 하는데 실제로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대책이라는 것을 갖고나 있는지 의심이 간다. 환율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2007년 5월만 해도 100엔당 750원쯤 하였으나 지금은 1600원쯤 한다. 일본 여행은 이제 매우 어려워졌다. 엔화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뒤로 나자빠질 형편이다. 정부는 개인이나 대기업보다는 환율에 관해 더 큰 권한과 책임이 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은 무엇인가? 시장에 맡기는 것인가. 고뇌하는 장관이나 비서관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고위 공직자는 모두 언제나 얼굴이 훤하다.

각종 신문과 방송은 경제위기를 맞아 일자리를 찾아준다는 캠페인을 맹렬히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쇼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노력하고 있다는 생색을 낼 뿐이라는 것이다. 방송사, 국회의원, 정부, 대기업은 모두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층이다. 기득권층은 경제위기와 실제로는 별 관련이 없는 집단이다. 방송사가 어려워도 일자리를 잃거나 봉급이 깎이지도 않는다. 국회의원 봉급 깎였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이 있는가. 기득권층은 경제위기에서 마치 자신들이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쇼를 하고 있다.

나는 이런 위선에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누구든지 분노할 수 있다.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정도로, 올바른 시간 동안에,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분노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올바르게 분노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나의 분노는 올바른 방향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우선 기득권층이 분노의 올바른 대상인지부터 차분히 따져봐야 한다. 하나하나 근거에 의거해 성찰해보고 분석해보면 분노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 같다. 마치 고통으로 고생하다 일단 의사가 검진결과를 말해주면 병이 낫지 않았더라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원인을 알면 처방도 있을 터이니까. 최악의 경우 처방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의 분노는 짧은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고 개인적인 처지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짜증을 분노로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개인의 힘을 넘어서는 복잡하고 구조적인 힘에 대해 우리는 무력감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성찰로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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