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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불과 말 /이명원

권력은 '일엽편주'…정부는 국민 무섭지 않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2-17 20:54:3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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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불사른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태워죽일 것이다."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경고는 나치즘의 미래를 정확히 예언했다. 히틀러 치하 독일의 불온서적 분서는 결국 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에서의 대량살육 전주곡이었다.

도처에서 불이 나고 있다. 1년 전 숭례문이 화마에 붕괴되던 장면을 넋을 잃고 지켜보던 한 문화재 학자는 "대한민국이 붕괴되는 것 같다"고 탄식했다. 기묘한 것은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반응이었다. 그는 '국민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고 제안했고, 이 엉뚱한 발언 탓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비통함에 대한 공감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용산에서 다섯 명의 철거민과 한 명의 진압경찰이 죽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거니와, 검찰은 그 비극의 책임을 전적으로 철거민에게 돌리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참 눈물이 많던 경찰청장 내정자는 사임발표를 하면서까지 '도심테러'를 운위했고, 여당 의원들은 '알 카에다 식의 자살폭탄테러' '양의 탈 쓴 폭력집단'이라며 망자를 노골적으로 모독했다.

정월 대보름 화왕산 갈대밭에서는 또 다른 사람들이 죽어갔다. 10년 만의 겨울가뭄이었고, 산정이었으므로 당연히 강풍이 불었다. 수만 명의 관람객이 운집해 있었지만, 안전요원도 소방대책도 거의 없었다. 속수무책이라 말하지 말라. 그것은 명백한 인재였다.

불길은 국민들의 마음속에서도 거세게 일고 있다. 정권의 거짓된 책략과 진실을 봉쇄하려는 시도가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언론인 성향조사를 감행하더니, 정권교체와 함께 공영방송의 사장이 해임되고 그 자리에 낙하산 인사들이 투입되었다. 일제고사를 반대했던 초등학교 교사들은 물론 공정방송을 요구했던 기자와 PD들이 해직되었다.

국민의 입과 귀를 막은 정권에 부응하여 국방부는 불온서적 명단을 재빠르게 발표한다. 경제위기를 경고하던 네티즌 미네르바가 단지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전격 구속되는 것과 동시에, 정부와 여당은 총력전의 태세로 포털 및 언론의 진실보도 기능을 제한하는 악법들을 연이어 입법화하고 이를 강행 통과시킬 태세다.

언론인과 네티즌의 입을 막은 전력이 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유력한 비판적 칼럼니스트와 논객들일 것이다. '88만원 세대론'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우석훈 박사에게 정부의 고위관계자가 청와대가 당신의 칼럼을 스크린하고 있다는 섬뜩한 암시를 던졌다고 한다.

이런 암시행위가 노골화된다면 이제 알 만한 칼럼니스트들 모두는 '아가리'를 닫고 절필하거나, 아니면 필화와 감옥에서의 사색으로 이어지는 '인생역경학교'에 입학해야 될 것인가. 연예인들은 과거 개그맨 김형곤 씨가 풍자했던 식으로 "회장님, 우리 회장님"을 예찬하고, "나는 미쳤어. 정말 미쳤어" 하는 거슬리는 가사 대신, 경쾌한 장조의 건전가요를 부를 날도 멀지 않은 것인가.

5공화국도 아니건만 청와대 행정관이 보도지침을 하달하고, 경찰들은 각이 잘 나오는 포토라인에서 흉악범의 마스크를 친절히 벗긴 후 '프레스 프렌들리'한 연출을 하면, 기자들은 기사를 '받아쓰는' 시대로 회귀할 것인가. 이 정권 들어 말이 '소리'로 전락하고 소통이 '허무개그'로 몰락하는 일이 잦아졌다. 마치 IMF 당시의 '구조조정'이란 말의 남발과 비슷하게, 나쁜 의미의 '선제적 대응'이 전광석화처럼 시민적 일상 곳곳에 투하되고 있다.

그러나 권력은 '일엽편주'에 불과하다는 엄연한 진실, 두려워할 만한 자는 국민뿐이라는 당연한 사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적 현실을 지혜로운 대한민국의 국민은 결코 잊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역사는 엿장수 마음대로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늘어진 고무줄의 반동은 더 억센 반발력과 탄성으로 평형감각을 회복하거니와, 정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민심이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만 필 것인가. 불이 말을 억누를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라. 오히려 말이 불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민심의 대지가 무서울 정도로 쩍쩍 갈라져 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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