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시론] 18세기 미네르바 이옥을 생각한다 /이지양

지도자들이여계몽군주 대신 응원단장 되어 힘을 돋아줘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2-09 20:46:32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정조로부터 문체가 불량하다고 네 번이나 견책을 당한 선비가 있었다. 바로 이옥(李鈺 ·1760~1815)이다. 그는 1792년 성균관 상재생으로 있을 때 답안지의 문체가 소설체라 하여, 매일 50수의 사륙문을 지어 반성하라는 벌을 받았다. 도학적인 점잖은 문체가 아니라 소설처럼 인정세태를 묘사했다는 이유였다. 1795년에도 같은 이유로 과거 응시자격이 정지되었다가 군대에 충원당해 충청도 정산현으로 갔고, 다시 경상도 삼가현으로 재배치됐다. 그래도 그는 과거 응시 자격이 영구히 정지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1796년에 별시 초시에서 수석을 차지했으나 문체가 법식에 어긋난다고 하여 꼴찌 합격자로 바뀌었다. 그리고도 다시 문제가 생겨 1799년 겨울에 삼가현으로 재충군되어 갔다가 이듬해 봄에 풀려났다.

이것이 국왕 정조가 선비들의 문체가 소설투로 변해가는 것을 바로잡아보겠다고 엄명을 내렸던 사건, 이른바 '문체반정' 사건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문체를 주도하고 유행시킨 사람은 국왕 정조도 인정했듯이 연암 박지원이었다. 그리고 남공철 이상황 심상규 김조순 등 벌열가문 출신 고관대작들도 앞다투어 그런 유행에 가세했다. 그러나 이들은 형식적인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을 뿐인데, 한미한 가문 출신의 선비 이옥만은 집요하게 감시당하고, 처벌받았다. 반성문, 과거정지, 합격순위 재조정, 충군, 재충군 등으로 말이다.

일국의 국왕이 선비들의 문체 같은 자잘한 것에 왜 그토록 핏대를 세웠던가에 대해 연구자들의 해석이 일치하진 않는다.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비판적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서라고 보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남인들을 키우고 싶은데 남인들이 대거 천주학에 연루되자, 정조가 노론들의 문체를 트집 잡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무튼 정조가 서릿발 같이 단속한 덕분에, 중국으로부터 소설책의 수입이 금지되고, 소설투의 글을 써서 세상을 풍자 조롱하는 양명 좌파 문인들, 주자의 사상에 삐딱하게 어깃장을 놓는 사람들의 문집도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선비들의 문체는 다시 점잖게 되돌아갔다.

하지만 4차에 걸쳐 견책과 처벌을 받았던 이옥은 시종일관 자신의 문체를 고수했다. 그는 과거를 단념한 채 고향집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로 문학 창작에 전념했다. 요즘 읽어도 짜릿하게 재밌는 그의 산문들은, 지극히 사소한 것들, 비속하고 보잘것없는 것들만을 소재로 삼아, 시국과 세태를 비판 풍자하고, 세상인심을 사진 찍듯 그려냈다. 그리고 시대는 흘러 소설은 문학의 대표적 장르가 되었고, 이옥과 그의 작품은 오늘날 연구되고 있다.

18세기 당대에는 선비 이옥이 국왕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처벌받았지만, 역사적 대세는 이옥에게 판정승을 내린 셈이다. 정조는 조선조 역대 임금 중에 세종대왕에 버금갈 만큼 훌륭한 임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신하들의 모범이 될 만한 학문을 닦았고, 치세 의욕이 대단한 군주였다. 그런데도 한 가지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은, 바로 그의 장점이기도 한 '계몽적' 면모이다.

역사상 어느 나라든지 태평성대를 이루고 국력이 번창했던 때를 보면, 지도자가 '계몽군주형'이 아니라 '응원단장형'이다. 계몽군주형은 '내가 모범을 보일 테니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 하지만, 응원단장형은 실무진에 귀기울이고 그들이 신바람 나도록 '내가 응원하겠다'가 모토이다. 응원단장은 선수들을 믿고 필드의 규칙에 관여하지 않는다. 오직 모든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단결하도록 이끌어줄 뿐. 다원화된 사회일수록 계몽군주보다 응원단장을 갈구하건만, 왜 지도자들은 계몽군주를 꿈꿀까. 계몽군주는 그 편협한 우월감 때문에 전체 발전에 도리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태안의 기적을 만드는 우리 국민들. 이런 국민이 번영하지 못한다면 지구상 어느 나라가 번영할 수 있는가. 총명하고 부지런하며 배움에 열성이고 정열적이며 정의감이 넘치고 인정스럽고 생기 등등함이 하늘을 찌르는 국민이 아닌가. IMF극복, 2002 월드컵의 기적을 만든 국민이다. 지도자들이여, 이들을 계몽하지 말고, 응원하라! 최전방 실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라! 그리고 최대한 포용하라! 진정한 리더십은 포용력에 있다!!

성균관대 강사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3. 3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4. 4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5. 5“끝내 알 수 없었던 어머니 마음…그 알 수 없음이 인간이죠”
  6. 6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7. 7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8. 8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9. 9“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10. 10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1. 1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2. 2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3. 3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4. 4정계 “지역언론 독립·공공성 훼손없게 계속 관심을”
  5. 5국힘 신임 부산행복연구원장에 오경은 전 구의원
  6. 6시의회 상임위 제한 폐지 논란일자 결국 심사 보류
  7. 7美 중간선거 시작, 우주서도 투표는 계속된다
  8. 8“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9. 9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10. 10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1. 1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2. 2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3. 3“부산 해양수도·북극항로 육성, 선원 역할 중요”
  4. 4한진칼 주식 더 사는 조원태…호반과 지분경쟁 2R
  5. 5[증시와이드] 불확실성 커진 증시…우량주 중심 냉정한 대응을
  6. 62050년 중간저장시설·2060년 영구시설…정부, 방폐물 관리 3차 계획안 여론 수렴
  7. 7석유류·공업제품값 ‘고공 행진’ 지속…부산 10월 물가상승 4개월만에 최고(종합)
  8. 8‘반도체 소부장’ 원익 공채에 1만2000명 몰려
  9. 9한양증권도 털렸다…고객·임직원 정보 일부 유출
  10. 10주가지수- 2026년 11월 3일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3. 3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4. 4“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5. 5에코델타에 유치원·초·고교 추가 신설
  6. 6해군 3600t급 디젤잠수함 ‘서희함’ 진수
  7. 7첫 공소청 수장 후보, 이정현·박철우·예세민 물망(종합)
  8. 8면세유 23억 원어치 빼돌린 유통업자 집유
  9. 9수능 ‘AI 안경 커닝’ 막는다지만…전문 탐지기 없어 실효성 의문(종합)
  10. 10141개 시민단체도 노동계도 ‘국제신문 회생’ 인가 촉구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3. 3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4. 4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5. 5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6. 6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7. 7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8. 8[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9. 9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10. 10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등골 프로텍터
바이낸스 턴 북한 해커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제신문 정상화에 여야 한뜻…능인선원 결단하라
대통령 순방 정보 유출…국가 보안체계 전면 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일상으로의 초대
SNS라는 광장,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