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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돈에 함몰된 불안한 사회 /탁석산

증시 추락에 실패자 낙인…돈·성공 이외 가치 찾아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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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08-10-26 20:53:15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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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는 실물경제 위기에 이르렀고 실물경제 위기는 사회전반에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불안에 빠져 있다. 주가 폭락으로 인해 아침에 눈을 뜨기가 겁난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럼 왜 사람들은 불안해할까. 탐욕 때문인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아 보인다.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의 불안은 지위의 불안이라고 말한다.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불안의 원인으로 그는 다섯 가지를 꼽는다. 즉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등이다. 여기에서 능력주의를 보자.

옛날에는 지위가 세습되었다. 양반과 상인의 구별이 존재했고 노비는 대를 이어 노비였다. 신분은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고 신분이 낮은 사람은 가난했고 신분상승의 기회가 없었다. 즉 불평등한 사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는 가난한 사람도 존엄을 얻을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고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거나 운명이라고 생각되어질 수 있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는 말은 분명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런 위안은 없다. 지금은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이다. 의무교육이 존재하고 누구나 창업할 수 있으며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자 이제 가난한 사람은 실패자로 간주되기 시작하였다. "세속적 지위가 내적 자질과 완전히 분리된 것도 아니며, 또 부유하고 권세 있는 자들이 반드시 부패한 수단으로 그러한 지위에 올라간 것도 아니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능력주의 시대에 왜 자신이 성공하지 못했는가를 정당화해야 하는 괴로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가 아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하는 이 시대에 돈이 없다는 것은 무관심과 무시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하지만 영혼이 부자인 사람이라는 말은 더 이상 효험이 없다. 그렇게 재주가 많고 훌륭한데 왜 가난해?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 아니야. 이런 말이 더 일상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런 힐난에 대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삶이 소박할 뿐 가난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회적으로 수용되는지는 의심스럽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은 그 중에서도 부유한 국가이다. 아프리카의 국민총생산량보다 한국의 것이 더 많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주식 시장의 폭락에 영혼마저 뒤흔들리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돈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시대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실패자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것이 사실이라면, 주식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국가가 많은 돈을 퍼붓고 부양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일시적으로 성공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혼은 항상 돈에 얽매여 있고 가난과 실패가 곧바로 연결되어 있는 한, 개인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생에 돈이나 성공이 아닌 다른 기준이 있다는 것이 널리 인정되는 것이 필요하다. 가난은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영혼을 맑고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의 부귀영화도 결국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 성공이나 성취보다 세상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더 가치있다는 것, 세속적인 가치가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를 기준으로 살아야 흔들리지 않고 불안을 없앨 수 있다는 것. 이런 생각들이 존중받아야만 불안이 상당 부분 없어질 것이다. 기준이 외부에 있다면 외부의 변화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불안은 밖에서 올지 모르지만 치유는 안에서 해야 한다.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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