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생명을 미소짓게 하라 /정찬주

미소지으면 그때가 극락 모든 생명은 웃을 자격 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8-08-08 20:47:40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여름인데도 이른 아침부터 날이 우중충하면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슬리퍼를 신은 채 내 산방 이름이기도 한 이불재(耳佛齋)라고 쓰인 이정표까지 나갔다가 돌아온다. 산길 가에 핀 여러 꽃들이 우울한 기분을 씻어주기 때문이다. 묵정밭에는 노란 달맞이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고, 배롱나무들도 붉은 꽃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어머니와 내가 일군 참깨 밭의 흰 참깨 꽃도 볼 만하고, 법정스님께서 씨앗을 주어 심은 해바라기들도 '나도 감상하라'는 듯 일제히 꼿꼿하게 서서 농성하고 있다. 특히 사립문 옆 돌담에 핀 능소화는 아내를 기쁘게 한 꽃이다. 재작년에 뜬바위마을 중대장 댁에서 서너 뼘 크기의 어린 능소화나무를 얻어와 심은 것인데 올해 처음으로 꽃등(燈)을 밝히고 있다.

붓다는 늘 미소 짓는 분이다. 어느 절을 가보아도 미소 짓지 않은 부처님은 없다. 일본 어느 절에선가 '우는 미륵'을 보고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그것은 예외이다. 무정물인 꽃도 미소 짓고 있으니 붓다이다. 피서의 공간인 개울가 그늘의 반석도 나를 미소 짓게 하니 붓다이다. 허물투성이인 우리도 미소 짓는 순간에는 붓다가 된다.

내가 불교에 깊이 귀의하게 된 까닭도 부처님의 미소를 보고 느낀 바 컸기 때문이다. 70년대 초 학번인 나는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반독재를 외치는 데모가 날마다 남산 교정을 휩쓸었고, 강의실의 휴강 기간도 그만큼 잦았던 것이다. 휴강기간이 길어지거나 방학이 되면 나는 수건 한 장, 칫솔 한 개가 든 가방을 메고 화순 쌍봉사를 찾았다. 그 무렵의 쌍봉사는 퇴락한 암자 규모로 식구라고는 주지스님 한 분, 공양주보살 한 분이 전부였다. 주지스님이 출타하고, 공양주보살이 무슨 일인가로 마을로 가버리면 나 혼자 절에 남아 있기도 했다.

꽃이 지는 날은 절이 너무 쓸쓸하여 소설습작은커녕 내 마음을 주체하기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밥값은 해야 할 성싶어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거나, 마른 걸레를 들고 법당으로 들어가 청소하다보면 문득 산란한 마음이 가라앉아 있곤 했다. 하루는 불단 위로 올라가 부처님의 손바닥과 어깨에 쌓인 먼지를 닦아드릴 때였다. 무심코 허리를 펴고 부처님을 올려다보는 순간이었다. 부처님이 미소 짓고 있었다. 부처님의 미소를 보는 순간 눈에서 헛것이 어지럽게 떨어져나가는 듯했다. 전율이 등을 타고 흘렀다.

'아, 저 미소 짓는 경지가 바로 부처의 경지구나!' 나만의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었다. 그동안에는 건성으로 법당을 들락거렸는데 어떤 오의가 홀연히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미소는 가슴을 열게 한다. 서로 소통하게 하여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게 한다. 그러나 화는 가슴을 닫게 한다. 시비의 벽을 쌓게 하여 불신과 증오를 더욱 배가시킨다. 요즘 권력을 탐하는 종교인들이, 이념을 달리하는 단체의 인사들이 보여주는 비본질적인 행태를 봐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선사들은 미소 짓는 순간이 극락이요, 화내는 순간이 지옥이라고 설했을 것이다. 일타스님이 번역하여 소개한 문수보살의 게송도 진정한 인간의 길을 다시금 생각게 해준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아내는 산방 천정에 사는 박쥐가 어디론가 나가버렸다고 좋아한다. 검은 쌀처럼 생긴 박쥐똥이 방구석에 없는 것을 보니 아내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박쥐식구들이 아주 먼 숲속으로 이사를 간 것 같아 허전하다. 아내는 밤중이 되면 이 방 저 방을 날아다니는 박쥐가 무서워 그런 마음이 들었겠지만 나는 박쥐의 고마움을 알기 때문에 박쥐에게 미안하기조차 하다. 박쥐 덕분에 파리나 모기를 쫓기 위해 가정용 살충제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지금까지 단잠을 이뤘던 것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인간이 자고 있는 동안 해충들을 먹이로 잡아먹고 있으니 인간과 박쥐 모두 공존하는, 아니 서로 돕고 사는 게 참 좋지 아니한가. 이 사소한 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생태계 사슬의 일부분일 뿐이다.

사실, 박쥐가 무섭다는 것은 선입관 내지는 사람 중심의 관점일 뿐이다. 생명 중심의 세상에서는 박쥐도 사람과 같이 살려고 하는 소중한 생명이니 박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박쥐와 정이 들어 함께 살 만했는데,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아 아쉽다.

'숫타니파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나는 오늘 그 구절을 이렇게 바꿔본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 미소 짓게 하라.'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년 새 담당 12명 교체…‘무한 민원’ 공무원 번아웃
  2. 25㎞ 출퇴근 길도 관용차로 모신다? 부구청장들 의전 논란
  3. 36일 개막 BIFF도 ‘암살자(들)’ 후폭풍…레드카펫·무대 행사 줄취소
  4. 4나가기 싫은 부캉이…市 구조 멈추고 관찰키로(종합)
  5. 5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6. 6‘가덕도신공항 청신호’… 실무 맡았던 대우건설 이강석 대표이사 공식 취임
  7. 7재학생 48명 영도 절영초 통폐합 또 무산
  8. 8[사설] 가덕도신공항 공사비, 법 개정 앞서 정부가 힘 실어야
  9. 9신세계 센텀시티서 부산 대표 미식 브랜드 팝업
  10. 10금융권 덮친 AI發 무차별 해킹…같은 IP 여러 곳 침투(종합)
  1. 1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2. 2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3. 3[속보] 李 대통령 지지율 37.4%.. 민주 42.5%, 국힘 38.4%
  4. 4[속보] ‘실탄 없이 경계 근무’ 사례 추가 확인, 국방부 기관 경고 방침
  5. 5‘盧 수사’ 與-한동훈 논쟁 확전…“석고대죄하라”-“성역화 말라”
  6. 6국힘, 장외집회로 정부·여당 압박…민주 “張, 북치고 고함만”(종합)
  7. 7아시안게임 논란에 병역특례 도마 위…정치권 개편론 확산
  8. 8젤렌스키 또 북한·한국 언급, 러, 北에 제트추진 드론 기술도 공유한 듯"
  9. 9李 대통령 “무책임 극단주의 ‘무극파’ 경계" 언급.. 인선 반발 의식했나
  10. 10장동혁 “李 대통령, 대북 송금 이상의 뭔가 있나".. 北에는 분노조절 '잘해'
  1. 1‘가덕도신공항 청신호’… 실무 맡았던 대우건설 이강석 대표이사 공식 취임
  2. 2신세계 센텀시티서 부산 대표 미식 브랜드 팝업
  3. 3금융권 덮친 AI發 무차별 해킹…같은 IP 여러 곳 침투(종합)
  4. 451억 예상 임대수입 다시 계산하니 29억? 사업성 검증 논란
  5. 5전남 시·군 절반 이상이 지난해 지역사랑상품권 국비 다 못 써.. '실수요 고려 필요'
  6. 6부산의 혁신 기업들, 지역발전 동맹 결성
  7. 7누리호 5차 발사 초읽기…6일 세운다
  8. 8CU ‘리센느 빵’ 보름만에 60만 개 판매
  9. 9‘직원용 시스템’ 등 빈틈 공격…現 보안체계론 AI해킹 무방비
  10. 10해운대 노을 보면서 명상…파라다이스호텔 오션힐링
  1. 11년 새 담당 12명 교체…‘무한 민원’ 공무원 번아웃
  2. 25㎞ 출퇴근 길도 관용차로 모신다? 부구청장들 의전 논란
  3. 3나가기 싫은 부캉이…市 구조 멈추고 관찰키로(종합)
  4. 4재학생 48명 영도 절영초 통폐합 또 무산
  5. 5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6. 6AI로 지인 성착취물 제작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 잡고 보니 현직 경찰관(종합)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5일
  8. 8기장 병산저수지 때 아닌 녹조…악취 진동
  9. 9[한 손 뉴스] 1400년 역사 동래온천지구…전국 네 번째 온천도시 지정
  10. 10책임 더 커진 경찰, 해킹 내사…‘사이버 1호 사건’ 가능성
  1. 1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2. 2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3. 3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4. 4“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5. 5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6. 6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7. 7‘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8. 8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9. 9[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10. 10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배지의 실력행사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상표권 알박기
민원인(들)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가덕도신공항 공사비, 법 개정 앞서 정부가 힘 실어야
AI 해킹에 노출된 금융권 보안체계 재점검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드골 대통령과 군복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