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경찰기자가 피로가 쏟아질 때도 종종 새벽까지 채널을 고정시켜 놓는 외화가 있다. 바로 'CSI과학수사대'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길그리섬이나 호라시오 반장은 최첨단 과학수사기법으로 어떤 강력범죄도 해결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화려한 액션이나 고도의 촬영기법을 찾아보기 힘든 이 드라마가 전세계 수많은 '마니아'를 불러 모으는 비결도 오직 이 때문이다. 'CSI 효과'(과학적 범죄감식 결과가 3일이면 나온다는 환상을 피해자에게 심어주는 현상)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우리 나라 역시 과학수사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1986~1991년 4월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은 발로 뛰는 수사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과학수사 기법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는 DNA분석실이 생겼다. 이는 삼풍백화점(1995년), 대구지하철(2003년) 등 대형사건 조사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지난해 서래마을 영아유기사건 때는 국제적 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DNA 분석으로 범인을 입증해 보이면서 과학수사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부산에서도 지난 8일 발생한 '범천동 식당 여주인 피살 사건' 당시 부산진경찰서의 과학수사팀이 피해자의 손톱 밑에 있던 미량의 핏자국을 분석해 1주일 만에 사건을 해결했다.

화성사건 당시 무속인의 힘까지 빌렸던 수사기법이 불과 15년 만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수사 선진국'이 된 듯하다. 과학수사는 범인 검거뿐 아니라 공소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어린이와 여성 등 약자를 대상으로 한 이상범죄의 증가 추세, 공판중심주의 강화 등으로 그동안 관련자의 진술과 간접증거에 의존했던 관행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DNA나 지문 분석 등 첨단기법 못지 않게 자금추적, 회계분석, 컴퓨터분석 등 지능범죄에 대한 전문수사인력도 중요하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과학수사 강화를 위해 전문인력과 첨단 장비를 확충하겠다고 강조했다. 과학수사가 늘어나는 수사 장기화와 고비용이라는 장애물을 넘어 피해자는 물론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파수꾼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